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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전통적인 네덜란드 풍차마을 잔세 스칸스Zaanse Schase에는 잔Zaan 강변을 따라 풍차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시퍼런 강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주변은 평평하고 낮은 습지로 뒤덮여 있었다. 하기야 국가의 이름이 '낮은 땅'이라는 의미의 네덜란드Netherlands가 아닌가!  국토의 20%가 간척지이고, 25%의 국토가 해수면보다 낮으니 낮은 땅이라고 할만하다.

개간된 땅은 염분이 남아 있어농사에 적합지 않아 주로 가축을 키우는 목초지로 활용됐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가공된 치즈 진열대와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은 관개용 풍차를 만들어 습지의 바닷물을 퍼내고, 그 자리를 흙으로 메워넣어 땅을 조성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축축했고, 그 땅을 딛고 다니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막신 또한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풍차가 되입된 13세기 경 풍차는 밀가루를 제분하기 위한 동력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위의 사진에서 처럼 풍차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용해 각종 곡물을 빻았다. 아직도 몇몇 풍차 내부에는 이러한 작업장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래 네덜란드 전역에는 1만여 개의 풍차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광용 및 폐풍차 등을 모두 합해봐도 1천여 개 남짓하다 하니 아쉬움이 더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잔세스칸스 Zaanse Schans 지역에만 1천여 개 이상의 풍차가 돌아갔으나 지금은 관광용 풍차 몇 개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풍차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것으로 풍차마을 관광을 끝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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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벨기에 브뤼헤의 풍경
일광욕을 즐기며 식사하도록 의자가 밖으로 배치된 Tea Room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구 도심을 지나간다.
마차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동상
수로 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민들
사랑의 물이라고 불리우는 수로
수로 곁의 조그마한 앙증스런 집

4월의 어느 날, 벨기에 관광에 나섰다, 벨기에의 숱한 도시 중에서도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도시 브뤼헤를 중심으로 트레킹에 나섰다.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분주히 오가는 운하를 따라 아름다운 수녀원을 통과하여 뷔르흐(Burg) 광장에 이르렀다.

수로의 교량 중앙에 한 석고상이 보인다. 물의 성인상이다.
체코의 얀 네포무크 신부상이 벨기에의 수로 위에 서 있다.

수로 위 교량에 한 신부상이 서있다. 실제 이 신부상은 물의 수호성인으로 벨기에 사람이 아니지만, 수로가 많기 때문에 이곳의 수로 성인으로 추앙을 받는다.

얀 네포무크 신부는 체코 프라하 교구의 주교였다. 그는 원정 중인 바츠라프 4세의 왕비가 외도를 했다는 고해성사를 들어줬다. 후에 그는 바츠라프 4세로부터 고해 내용을 말하라는 왕명을 종교적 신념을 들어 거역하고 카를교 중간에서 거꾸로 물에 던져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 뒤로부터 얀 네포무크 신부는 물의 수호성인으로서 체코에서 뿐만 아니라 이곳 벨기에의 물의 도시 브뤼헤에서도 추앙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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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의 노란 건물이 성혈성당이고, 중앙의 검은 건물이 성혈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광장 정면에는 시청사(市廳舍)가 중세건축물의 화려함을 과시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곳 귀퉁이에 모든 가톨릭교도들의 염원이 감도는 성혈 대성당이 독특한 검은 빛깔로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2,000년 가까이 보존돼 왔던 성혈이 언제 대중에게 공개되는 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황금색의 통 안에 투명한 유리를 통해 보면 피 묻은 섬유가 있다.

우리가 성당에 입장한 그 날, 그 시간에 예수님의 성혈이 공개되었기에. 의식을 진행하는 여성봉사자가 성혈이 든 유리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유리관 안에는 아직도 붉은 색의 성혈 흔적이 역력한 섬유질의 물체가 들어있다.

제2차 십자군 원정(1147~1148) 당시 플랑드르의 한 백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셔왔다. 워낙 소중한 성 유물(聖 遺物)이었던지라 보관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12세기 성혈을 모시기 위한 성당이 건축되었다.

중세에는 성인의 유해를 몰래 모셔가 자신들의 마을에 안치하고 그 마을의 수호성인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인들의 성유물이 그러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은 어떠하겠는가!

십자가 아래 붉은 박스 안에 성혈을 보관하는 황금색 통을 모셔놓았다.

서기 1400년 직후 브뤼헤에 성혈수호단이 결성되어 성혈 수호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31명의 성혈수호단은 반드시 브뤼헤에 거주해야 했으며, 성혈의 보호와 숭배를 더욱 발전시키는 사명을 띠었다.

그들은 브뤼헤에서 가장 명예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때부터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헤를 중심으로 성혈 숭배 사상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혈수호단은 지구 최고의 성 유물을 철저하게 지켜냈다.

예수님의 성혈이 묻어 있다는 섬유를 보관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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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는 3대 걸작 전시물로 속하는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여신 니케 그리고 모나리자가 있습니다. 이들 걸작들은 한 결같이 부족한 부분이 있죠. 부족의 미학에 대하여~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밀로의 비너스

서양의 절대적인 아름다움(Beauty)의 비율은 1대 1.618의 비율로 황금비율이라 일컫습니다. 밀로의 비너스도 역시 1:1.618의 비율을 정확하게 따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즉, 배꼽 위의 길이가 1이고, 배꼽 아래 하체부분이 1.618이기 때문입니다.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 섬에서 발견되어 밀로의 비너스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 조각은 기원전(BC) 150년경 멘데레스 강 유역의 안티오키아의 어느 조각가가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두 팔이 없는 부족함으로 인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조각상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계단 중앙에서 직접 촬영한 승리의 여신 Nike

1863년 에게해의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된 승리의 여신상은 기원전(BC) 190년경 로도스가 승전기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뱃머리에는 실제 여신상이 전통적으로 세워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여신 니케 상도 대리석으로 된 뱃머리를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러나 이 여신상은 뱃머리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옷자락이 잘 표현되어 있지만, 머리와 팔이 없습니다. 이러한 부족의 미학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어당겨 많은 관람객들이 승리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계단에 줄을 지어 있기도 합니다. 

 

모나리자 그림을 촬영하여 포토샵으로 보정한 사진

내가 루브르 박물관에 간 날은 모나리자 그림의 원본을 직접 전시했던 이벤트 날이었습니다. 원래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은 모방한 것이고 진품은 따로 보관한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 '리자 부인'을 모델로 1503~1506년 간 그렸던 초상화입니다. 

4년 넘게 나무판에 유채로 그린 이 초상화는 얼굴이 살아있는 듯하고, 미소는 신비롭고, 손은 스푸마토 기법으로 처리하여 윤곽선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처리하여 더욱 더 신비롭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눈썹이 없는 부족한 듯한 유화입니다.  

이처럼 루브르 박물관의 3대 걸작품은 모두 '부족의 미학'이라는 전제 아래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완전성을 추구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부족한 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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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겨울 대지에 피어 난 복수초 꽃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초의 기원을 찾아 보자.

어느 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아도니스에게 사나운 짐승을 절대 사냥하 지 말 것을 당부한 후 백조가 이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자신의 고향 인 키프로스 섬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당 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에 나섰다. 사냥개들이 동굴에서 쉬 고 있던 멧돼지를 공격하자 그는 창 을 힘껏 던졌다. 창은 멧돼지의 옆구 리에 보기 좋게 박혔다.

그러나 멧돼 지는 입으로 창을 뽑아내고 씩씩거리 며 아도니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 다. 사납게 달려들던 멧돼지는 도망 치던 아도니스의 사타구니를 들이받 아 공중으로 내던져 버렸다.

아도니 스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이내 죽어 버렸다. 아도니스의 비명 소리를 들은 아프로디테는 급히 이륜 마차를 돌려 되돌아왔으나 그녀가 도 착했을 때 그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 어 죽어 있었다.

급하게 마차에서 뛰어내린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저주로 탄생했으나 자신이 끔찍이 사랑했던 아도니스가 멧돼지에 의해 죽게 되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미소년과의 아름다웠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신들이 마시는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뿌려 꽃으로 피어나게 하였다.

이파리가 없이 꽃만 피는 것이 복수초

그런데 아도니스가 죽은 이유는 저승 왕비 페르세포네 때문이었 다는 설이 있다.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를 독차지하자 아프로디테의 애인이던 전쟁신 아레스(Ares)에게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관계를 알려줬다고 한다.

질투심에 눈이 먼 아레스는 아프로디테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멧돼지로 변신하여 사냥 나온 아도니스를 죽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는 아도니스가 죽은 자리에서 아네모네, 즉 바람꽃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이보다는 복수초가 탄생했다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는 복수초를 아도니스 (Adonis)라 부르며 아도니스의 죽음을 회상하곤 한다고 하니 더 그 런 생각이 든다. 우리 들녘의 복수초는 노란색이지만 서양의 복수 초는 잎이 무성한 가운데 붉은 꽃을 피우는 것도 있다. 마치 아도니 스의 붉은 피가 변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 한 행복’이지만, 서양에선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슬픈 사랑이 야기를 반영하듯 ‘슬픈 추억’이란다.

이 복수초를 가리켜 아도니스 의 피가 변해 피어났다고 하는데 복수초(Adonis)가 맞는지 바람꽃 (Anemone)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복수초라고 우기고 싶다. 식물분류학에서 복수초를 아도니스라는 속명으로 부르는데 이 이름 을 괜히 붙였겠는가.

어찌됐든 아도니스의 짧은 생애처럼 이 두 야생화는 아주 이른 봄 잔설 속에서 꽃을 피우고는 이듬해 다시 필 것을 약속하며 짧은 생을 마감하고 기나긴 잠에 빠져들고 만다.

한편, 그리스 신화와는 별도로 복수초는 일본 홋카이도와 사할린 에 살고 있는 아이누 족 전설에도 등장한다. 옛날 하늘나라에 쿠노니 공주가 있었다.

그녀는 외모만을 중시하여 성실하고 부지런한 두더지 신의 청혼을 마다하고 집을 나간다. 그녀는 휘몰아치는 눈 보라 속을 헤매다 여러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 고 차가운 대지 위에 쓰러진다.

부왕인 하느님은 성실함보다도 외 모만을 중시하여 두더지 신의 청혼을 거절한 그녀에게 벌을 내렸 다. 그녀는 매년 추운 눈 속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두더지 신은 쿠노니 공주가 추남인 자신을 외면했음에도 그녀를 진정 사랑했기에 꽃 주위의 눈을 치워 노란 복수초가 잘 피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인지 복수초는 ‘영원한 행복’이 라는 꽃말을 가진 애틋한 전설 속의 꽃이기도 하다. 복수초는 스스 로 발열하여 주위의 언 땅을 녹이고 지상에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줄기 주변은 눈이 녹아 항상 깨끗하다. 그것을 가리켜 두더지 신이 쌓인 눈을 녹였다고 말을 만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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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숲 속에서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식물이 있다. 겨우살이다. 땅에 내려오지 않고 오로지 나무 위에서만 자생하는 기생식물 겨우살이는 나무껍질을 뚫고 들어가 수분이 통과하는 곳에 뿌리를 내린다. 서양에서는 귀신 쫓는 식물로, 동양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겨우살이는 아마도 추운 겨울을 버텨낸 인고의 아픔을 간직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 듯하다.

한 겨울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겨우살이

서양에서는 눈 내리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축제가 있을 때면 문간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겨우살이를 걸어놓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남녀가 키스하곤 한다. 액운을 몰아내고 사랑이 이뤄진다나! 한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고고한 겨우살이가 이들 남녀의 앞길에 어떤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와 유사하게도 꽃말은 고난을 견디다정복이다.

독일에서는 겨우살이의 항암효과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독 종양과면역학실험연구소 커트 잰커 교수팀은 대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겨우살이 추출물을 혈액에 투여했다. 그 결과 투여한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 비투여자들보다 최소 32%나 높았고 부작용도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겨우살이는 체내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싸우는 것을 도와줬고, 암 치료에 수반되는 화학성분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다. 이 결과는 200912월 통합종양학회(The Society for Integrative Oncology) 저널에 소개되었다.

노란색 열매의 겨우살이

겨우살이는 불면증과 신경쇠약에도 효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가정에서는 일반적으로 차를 끓여 마시거나 술을 담가 마시면 좋다. 그늘에 말린 겨우살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넣고 30분 정도 우려낸 다음 보리차처럼 마시면 된다. 이때 쇠주전자를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흙으로 빚은 도자기류의 그릇을 사용해야 약효가 유지된다. 또한 겨우살이를 넣고 펄펄 끓이는 것보다 완전히 끓인 물에 우려내는 편이 낫다. 재탕을 하는 것은 필수다. 술을 담글 때는 과실주용 소주(35°)에 감초나 꿀을 약간 넣고 겨우살이를 넣어 3개월만 숙성시키고 겨우살이는 건져내고 술만 보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풀 종류는 3개월이 지나면 약간의 독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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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추의 꽃

분홍, 빨강 단풍잎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겨울을 나기 위해 제 잎을 벌겋게 물들이며 점차 잎을 떨구는 가을나무를 뒤로하고 낙엽을 밟으며 산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가을빛에 겨워 만개한 산국과 미역취의 샛노란 꽃무리가 점차 퇴색되어가는 가을 산의 쓸쓸함을 채워주고 있다.

볕 잘 드는 산비탈에 멀쑥이 긴 꽃대를 들어 올린 산부추가 둥근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서서히 영글어 가고 있다. 녹색줄기와 붉은 자주색의 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 원형으로 흩어진 꽃 송이송이에 벌이 떼로 달려든다. 산부추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벌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다. 아마도 가을바람의 장난이리라.

홀로 긴 꽃대를 밀어 올려 둥글게 피어 있는 고고한 모습에서 신선들의 자태를 연상했을까? 아니면 매콤한 산부추의 맛이 신선들이 먹기 좋아서 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산부추의 꽃말은 신선이다. 그러고 보니 산부추의 생김새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터지는 불꽃처럼 생겼다. 신들의 불꽃놀이! 그렇다면 언제 제우스의 번개가 불꽃처럼 튀어 올랐던가?

가을 꽃을 터뜨린 산부추

제우스를 주축으로 한 올림포스 신들과 크로노스의 형제들인 티탄(Titan) 신들이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때 키클롭스 형제들은 제우스가 자신들을 지옥에서 꺼내준 대가로 번개, 삼지창, 보이지 않는 투구를 만들어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에게 각각 선물했다. 제우스는 강력한 번개를 날려 티탄 신들을 위협했고,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높이 휘둘러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았으며,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투구를 쓰고 티탄 신들을 괴롭혔다.

또한 백 개의 손을 가진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도 무한지옥 타르타로스에서 해방된데 대한 보답으로 한 번에 수백 개의 돌덩이를 티탄 신들이 있는 오크리스 산으로 던졌다. 티탄 신들은 돌 뒤에 숨기 바빴다. 이때 제우스는 티탄 신들이 숨어있는 큰 돌을 향해 번개를 날렸다. 반발력 탓에 돌에 부딪친 벼락은 붉은 자주색을 띠며 스프링처럼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하늘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마치 산부추처럼. 그야말로 신들의 불꽃놀이였다.

번갯불 파편이 홍자색을 띤 것은 마찰열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 파편 아래에서 티탄 신들은 자신들의 열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탄 신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거인족 기간테스(Gigantes)와 지하심연의 괴물 티폰(Typhon)을 전쟁에 끌어들이지만 모두 올림포스 신들에 의해 제압된다.

결국 올림포스 신들은 티탄 신들과의 전쟁인 티타노마케아(Titanomacheia), 거인족 기간테스와의 전쟁인 기간토마케아(Gigantomacheia), 그리고 괴물 티폰과의 대결 등 3단계의 전쟁을 통해 완전히 권력을 장악한다. 이들과의 전쟁에서 제우스의 번개는 목표물에 명중한 다음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그 부서지는 불빛이 신들의 불꽃놀이 그 자체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산부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산부추는 홍자색의 꽃송이들이 수십 개 모여 둥근 한 송이 꽃으로 거듭난다. 꽃향기가 좋고 꽃가루가 많아서 벌들이 몰려들기에 안성맞춤인 밀원(蜜源)식물이다. 이른 봄 땅을 헤집고 올라오는 잎과 뿌리가 마치 달래와 같다 해서 산달래라고도 부른다. 잎과 뿌리를 된장에 넣어 끓이면 얼큰한 향과 맛이 구수함을 더해 줘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산부추의 맛은 시고 맵고 떫지만 독성이 없고 따뜻하다. 독이 없는 야생초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약효를 갖고 있다. 산부추도 몸속을 따뜻하게 해줘 소화불량, 천식, 가슴앓이, 협심증에 좋다고 한다. 또한 간과 심장에 좋은 식물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민간에서는 생즙을 내어 복용하면 공부에 찌든 청소년들의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물론 효과가 있다고 하니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 볼만한 야생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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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세상이 온통 누런색으로 도색되어 간다. 탁류와 같은 누런 색조의 흐름 속에 환하게 밝은 노란색 꽃이 한데 어우러져 꽃방망이를 만들고 있다. 여름이 한창인가 싶을 때 피기 시작했던 샛노란 꽃이 가을이 다 가도록 자태를 접지 않았다. 미역취 꽃이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긴 이 꽃을 사람들이 꺾을까봐 내심 걱정하느라 꽃말이 경계인가 보다.

미역취의 노란 꽃

새순이 돋았을 때 잎자루가 늘어진 모습이 미역을 닮았다고도 하고, 이 나물을 끓였을 때 미역처럼 흐물흐물 풀어진다고도 해서 미역취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돼지나물이라고도 부르는 미역취의 모습을 아무리 살펴봐도 돼지와 연관시킬 것이 없다. 아마도 돼지가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돼지는 뭐든 잘 먹는데.

노란 미역취 뒤로 붉은 산부추가 보인다.

미역취는 옛날 춘궁기(春窮期)에 주로 먹던 구황식물(救荒植物)이었는데 다른 나물에 비해 탄수화물과 칼슘이 많이 포함돼 있어 나름대로 훌륭한 식단에 속한다. 연한 미역취를 채취하여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물기를 꽉 짜서 없애고 들기름과 통깨 등 양념으로 무쳐 먹는 미역취는 그야말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삶아서 말려 보관한 나물을 물에 불려 볶아 먹어도 제격이다. 미역취는 최근 들어 묵나물로 많이 애용된다. 묵나물이란 묵을 쑤는 나물이 아니라 한 해 묵힌 나물이라는 뜻이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긴 노란 미역취 꽃

미역취는 약초로서도 이름값을 한다. 미역취에 포함된 비타민 A는 눈의 건강에 좋고, 비타민 C는 감기예방과 감기로 인한 두통에 좋다. 또한 방광염, 편도선염에도 효험이 있어 미역취 말린 것을 달여 마시기도 한다. 민간요법으로는 산에 오르다 타박상을 입으면 미역취를 으깨 그 즙을 상처 부위에 바른다. 각종 염증과 타박상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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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청미래 덩굴, 강원도는 참열매 덩굴, 전라도는 명감나무, 경상도는 망개나무 등등 그 이름도 많다. 청미래 덩굴은 반짝반짝 윤기 흐르는 넓은 잎과 둥그런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다. 널따란 잎은 가난했던 시절 소박한 망개떡에 배고픔을 달래보던 향수가 배어나오고, 정열적이며 고혹적인 빨간 열매는 처녀총각의 순수한 사랑얘기를 담고 있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 덩굴을 망개나무라고 하여 떡을 빚는데 사용한다. 송편처럼 빚은 반달모양의 찹쌀떡을 두 장의 망개나무 잎 사이에 넣어 김이 오른 찜통에 쪄 내는 망개떡은 나뭇잎의 향이 떡에 스며들어 상큼한 맛이 나며 잘 상하지도 않는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과 겨울 뒷골목을 누비며 찹쌀떡˜♪을 외치던 떡 장수의 애환이 묻어나는 떡이다.

청미래덩굴(망개나무)의 붉은 열매

역사적으로도 망개떡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기 550년경 가야연맹은 백제의 보호를 받는 부용국(附庸國)의 위치로 전락했었다. 이때 가야와 백제는 왕실간 혼인을 추구하기도 했었다는데 신부 측인 가야에서 이바지 음식으로 망개떡을 만들어 백제에 보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산속으로 피해 다닐 때 망개떡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망개 잎 표면에 형성된 미끈한 밀랍층은 잎과 접촉된 부분이 마르지 않도록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며 천연 방부제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피난 다니던 사람들의 휴대음식으로는 최고였을 것이다.

올림포스 산에 있는 신들에게도 주로 먹는 음식이 있었다. 신들이 마시는 음료는 넥타르(Nectar)였으며, 음식은 암브로시아(Ambrosia)라고 불렀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음료와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때 신들의 음식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안 되었을 터, 아마도 암브로시아를 이 망개나무 잎사귀로 싸놓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대에는 아무리 선계(仙界)라 할지라도 냉장고가 없었을 테니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에는 망개나무 이파리가 제격이었으리라.

청미래 덩굴의 열매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앵두 같은 빨간 열매 때문이다. 옛날 강원도 지역에 살던 머슴이 이웃 집 하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머슴이 매끈한 청미래 덩굴의 열매를 따 와서 그녀에게 말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리면 열매를 입안에 넣어 줄께.” 순진한 처녀는 머슴의 말을 곧이듣고 그대로 따라했다. 머슴은 입에 열매를 넣어주는 대신 자신의 입술로 마무리했다. 물론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여성이 반해버릴 정도로 청미래 열매의 때깔이 곱고 멋지다는 얘기다.

청미래 덩굴은 우리나라에서 토복령(土茯笭)이라 부르며 수은, 니켈, 카드뮴 중독을 비롯한 온갖 독을 푸는 효과가 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수은에 중독되어 있으므로 뿌리를 차로 달여 마시면 유용할 것이다. 옛날에는 잎을 차()로 달여 마시기도 했다는데 여기에 포함된 사포닌 등의 성분이 몸 안의 독을 풀어주며 피를 맑게 하는 약리작용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파리를 돌돌 말아 담배 피우듯 여러 번 피우면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하는데 담배 독을 해독하는 데는 좋을 것 같지만 그 연기는 어떤 작용을 할지 의문이다.

청미래 덩굴은 산귀래라고도 불린다는데. 옛날 난잡한 생활을 하던 한 남자가 매독에 걸렸다. 특효약이 없던 시절이라 부인은 남편을 산으로 쫓아버렸다. 그 당시 청미래 덩굴은 흉년이 들었을 때 흔하게 먹던 구황식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그 남자는 청미래 덩굴의 잎과 뿌리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 그 남자는 매독이 완전히 나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청미래 덩굴을 가리켜 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귀가하도록 했다는 의미로 산귀래(山歸來)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청미래 덩굴은 성병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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