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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음식점에 갔었는데 그 곳 옆으로 배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벚꽃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제 눈에 띈 것입니다. 하얀 배꽃은 약간 붉은 벚꽃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순백의 청초한 배꽃 이미지를 보고 있으려니 고려말 문신 이조년(李兆年) 님이 봄 밤의 정서를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 대비를 통해 그려냈던 시조 '다정가(多情歌)'가 생각납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라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냥하여 잠 못드러 하노라
위의 시조에서 맞춤법이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한글 고어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라마난은 "알랴만은"이고, 잠 못드러 하노라는 "잠 못 들어 하노라"입니다.
옛집에 담으로 둘러쳐진 개나리, 그 안에 배나무가 우뚝 서 있고 하얀 배꽃이 알알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옛 고향의 시골풍경을 자아내게 합니다. 추억에 젖어 봅니다.
배꽃 뿐만 아니라 오른쪽에 벚꽃도 보입니다. 배꽃은 하얗죠. 그래서 시조에서 이화(배나무 꽃)가 월백, 즉 달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난다고 표현했겠죠.
이조년 님의 시조를 현대어로 읊어 봅니다.
흰 배꽃은 달빛에 하얗게 빛이 나고
저 하늘의 은하수는 한밤중을 알리는데
배나무 가지에 스며든 봄의 정서를
두견새 네가 어찌 알겠냐 만은
다정함도 병인 듯 나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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