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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벨기에 브뤼헤의 풍경
일광욕을 즐기며 식사하도록 의자가 밖으로 배치된 Tea Room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구 도심을 지나간다.
마차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동상
수로 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민들
사랑의 물이라고 불리우는 수로
수로 곁의 조그마한 앙증스런 집

4월의 어느 날, 벨기에 관광에 나섰다, 벨기에의 숱한 도시 중에서도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도시 브뤼헤를 중심으로 트레킹에 나섰다.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분주히 오가는 운하를 따라 아름다운 수녀원을 통과하여 뷔르흐(Burg) 광장에 이르렀다.

수로의 교량 중앙에 한 석고상이 보인다. 물의 성인상이다.
체코의 얀 네포무크 신부상이 벨기에의 수로 위에 서 있다.

수로 위 교량에 한 신부상이 서있다. 실제 이 신부상은 물의 수호성인으로 벨기에 사람이 아니지만, 수로가 많기 때문에 이곳의 수로 성인으로 추앙을 받는다.

얀 네포무크 신부는 체코 프라하 교구의 주교였다. 그는 원정 중인 바츠라프 4세의 왕비가 외도를 했다는 고해성사를 들어줬다. 후에 그는 바츠라프 4세로부터 고해 내용을 말하라는 왕명을 종교적 신념을 들어 거역하고 카를교 중간에서 거꾸로 물에 던져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 뒤로부터 얀 네포무크 신부는 물의 수호성인으로서 체코에서 뿐만 아니라 이곳 벨기에의 물의 도시 브뤼헤에서도 추앙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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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의 노란 건물이 성혈성당이고, 중앙의 검은 건물이 성혈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광장 정면에는 시청사(市廳舍)가 중세건축물의 화려함을 과시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곳 귀퉁이에 모든 가톨릭교도들의 염원이 감도는 성혈 대성당이 독특한 검은 빛깔로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2,000년 가까이 보존돼 왔던 성혈이 언제 대중에게 공개되는 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황금색의 통 안에 투명한 유리를 통해 보면 피 묻은 섬유가 있다.

우리가 성당에 입장한 그 날, 그 시간에 예수님의 성혈이 공개되었기에. 의식을 진행하는 여성봉사자가 성혈이 든 유리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유리관 안에는 아직도 붉은 색의 성혈 흔적이 역력한 섬유질의 물체가 들어있다.

제2차 십자군 원정(1147~1148) 당시 플랑드르의 한 백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셔왔다. 워낙 소중한 성 유물(聖 遺物)이었던지라 보관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12세기 성혈을 모시기 위한 성당이 건축되었다.

중세에는 성인의 유해를 몰래 모셔가 자신들의 마을에 안치하고 그 마을의 수호성인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인들의 성유물이 그러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은 어떠하겠는가!

십자가 아래 붉은 박스 안에 성혈을 보관하는 황금색 통을 모셔놓았다.

서기 1400년 직후 브뤼헤에 성혈수호단이 결성되어 성혈 수호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31명의 성혈수호단은 반드시 브뤼헤에 거주해야 했으며, 성혈의 보호와 숭배를 더욱 발전시키는 사명을 띠었다.

그들은 브뤼헤에서 가장 명예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때부터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헤를 중심으로 성혈 숭배 사상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혈수호단은 지구 최고의 성 유물을 철저하게 지켜냈다.

예수님의 성혈이 묻어 있다는 섬유를 보관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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