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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또는 닭의장풀

무더위를 식혀주던 가랑비가 그쳤다. 그 적은 비에도 산 속의 풀과 나무는 축축이 젖은 팔을 벌리고 상쾌한 기운을 내뿜는다. 어렸을 때 발에 채이게 흔하던 달개비가 풀밭 한 가운데에서 푸르른 색을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슬을 머금은 꽃잎은 뭔지 모를 청초함이 스며있었다.

달개비를 야생화로 여기지도 않았던 내가 언제부턴가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달개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닭의 벼슬처럼 파란색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이 이채롭다. 달개비는 닭을 키우던 시골의 닭장 근처에 많이 자란다고 해서 닭의장풀이라고도 부른다. 닭똥의 양분을 잘 흡수해서 일까?

농촌에서는 잡초라고 뽑아버리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피어나고 다시 또 피어나는 달개비는 어떠한 수난(受難)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야생초다. 꽃의 수명은 유난히 짧다. 하지만 꽃은 교대로 계속 피어나 없어지지 않는다. 달개비 꽃은 화려한 하루를 보낸 뒤 다음날 자신의 몸을 녹여 아침이슬과 함께 어우러진다. 꽃잎이 녹아버린다는 얘기다.

그러니 달개비 군락지를 발견해도 꽃은 단 몇 송이밖에 없을 것이다. 화려한 꽃으로 단 하루만 인간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줘서 일까? 꽃말이 순간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나의 가슴에 새겨진 꽃은 영원한 즐거움으로 남는다.

아침이슬에 젖은 닭의장풀

달개비, 즉 닭의장풀에는 황당한 전설이 전해진다. 내기를 좋아하는 두 남자가 끊임없이 내기를 하고 있었다. 팔씨름, 돌 던지기는 물론 각종 시합을 하면서 내기를 계속했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비기기만 하였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한 밤중에 돌을 껴안고 물속에 들어가 누가 오래 버티는지 시합을 하기로 했다.

두 남자의 아내들은 승부욕이 강한 두 사람이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버틸 것이기 때문에 그중 한 사람은 날이 밝으면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아내는 날이 밝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들은 수탉이 울면 새벽이 밝아 올 것을 염려하여 닭장 주변에서 서성이며 애를 태웠다.

너무 걱정을 한 탓일까? 그만 부인 중 한 명이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얼마나 걱정했으면 애가 타서 죽었을까! 그제 서야 두 남자는 내기시합을 중단했으나 이미 늦었다. 해가 가고 새봄이 밝아오자 아내가 죽은 자리에서 달개비, 즉 닭의장풀이 피어났다는 것이다.

달개비의 학명은 Commelina communis L.이다. 린네(Linne)는 식물에 학명을 처음 붙이기 시작한 식물학자다. 그는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꽃을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시켜 구분하기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학명을 붙였다. 달개비는 꽃잎이 2장만 쫑긋 솟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래쪽에 반투명으로 보일듯 말듯한 꽃잎 1장이 더 있다는 사실이 린네에게는 퍽이나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는 달개비에 꼼멜리나(Commelina)라는 속명을 지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속명은 어디에서 착안했을까? 17세기 네덜란드에는 꼼멜린(Commelin)이라는 3명의 동명이인 식물학자가 있었다. 이들 식물학자중 두 명은 활발한 활동을 하였지만, 나머지 한 명은 뚜렷한 성과 없이 조용히 지냈다.

두 개의 큰 꽃잎과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꽃잎 1개를 달고 있는 달개비가 3명의 식물학자의 활동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린네는 달개비의 속명에 이들 식물학자의 이름을 붙였다.

역광에 비친 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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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추운 초봄에 피어난 한국 토종 모데미풀

1. 한국 특산 1속 1종의 식물

부엽토가 그윽이 쌓여 습기가 가득한 저기 저곳에 이름 모를 하얀색 꽃이 발걸음을 잡아끈다.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살펴보니 틀림없는 모데미풀이다. 사진에서만 봐 왔던 식물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사진에서는 계곡의 아주 습한 곳에 피어 있었는데 이곳은 물가가 아니라서 더욱 신기하다.

모데미풀은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이다. 그러니 모데미풀이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다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환경부는 모데미풀속(屬)에 속하는 1속(屬) 1종(種)의 이 식물을 멸종위기식물로 지정하여 해외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모데미풀은 중요한 식물로 우리에게 보전가치가 높으나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원예종으로 키울 수 없기에 더 더욱 희귀하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아름다움을 뽐내는 연약한 꽃은 망망대해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었을 연약한 에우로페를 생각나게 한다.

# 이후부터는 고대 그리스문명을 설명하기 위해 모데미풀을 연상시켜 글을 썼을 뿐 모데미풀과의 실제적인 연관성은 없다.

2. 에우로페와 유럽의 탄생

그리스 신화에도 모데미풀처럼 애잔하면서도 가냘픈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우로페(Europe)였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만지면 깨질세라 애지중지 아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우로페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꽃이 피기 시작하자 하얀 꽃들을 만지며 그 향기를 들이키고 있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Zeus)는 마치 모데미풀의 흰 꽃처럼 연약한 듯 하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에우로페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천하의 난봉꾼이던 제우스는 흰 황소로 변신하여 그녀 곁을 어슬렁거렸다. 에우로페는 너무 멋진 황소가 나타나자 아름다운 데이지꽃을 꺾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황소의 목에 걸어주며 좋아했다.

천천히 황소를 바라보던 에우로페는 황소의 미끈한 등에 시선이 닿았다. 그녀가 무릎 꿇은 황소의 등에 슬며시 엉덩이를 걸치자 제우스는 그녀를 태운 채 쏜살같이 내달렸다. 소아시아의 페니키아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 제우스는 곧바로 바다를 헤엄쳐 크레타(Crete) 섬에 당도했다.

에우로페의 납치, 노엘 니콜라 쿠아펠 作

에우로페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황소의 등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었다. 가냘프고 애잔한 모데미풀과 같았던 에우로페는 크레타 섬에서 제우스의 사랑을 듬뿍 받아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 등 3남매를 낳게 되었다. 황소로 변했던 제우스가 크레타 섬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뒤 어슬렁거리다 쓰러져 쉬었던 풀밭에 크노소스 왕궁이 세워졌다.

모데미풀처럼 연약하고 애잔한 에우로페(Europe)는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그리스로 건너간 여인이었다. 이 여인으로 인해 크레타 섬에 그리스 최초의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것은 곧 유럽문명의 시작이었다. 에우로페(Europe)의 이름에서 영어의 유럽(Europe)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는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에우로페의 이동과정은 소아시아 서부해안에 거주하던 이오니아(Ionia)의 민족들이 그리스의 도서지역으로 이주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유럽문명의 기초가 바로 소아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 아시아의 문명이 유럽문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오니아 지방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내륙의 도시들까지 그리스 해양세력이 진출하여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발전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입김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데미풀을 보면서 연약하기 그지없던 에우로페의 모습을 연상해 본다.

3. 최초의 고대 그리스 문명 탄생과 전이과정

제우스의 후손이 크레타 섬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최초 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미노스는 형제들과의 왕권 경쟁에서 승리하여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그리스 최초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을 꽃 피우게 된다. 미노아 문명(Minoan)은 기원전(B.C.) 2000년∼1400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627∼1600년경의 산토리니 섬 화산폭발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크레타 섬의 연안을 강타하여 많은 시설들이 파괴됨에 따라 점차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정,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던 미로의 궁전으로 유명하다.

기원전(B.C.)1500년∼1100년경에는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 본토 미케네로 문명이 점차 전이되어 미케네 문명(Mycenean)이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게 되었다. 물론 크레타 섬에서 본토로 문명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본토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크레타 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제압하는 신화가 등장한다.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죽음은 크레타 섬의 패권이 점차 끝나가고 있음을 나타내며, 테세우스의 등장은 그리스의 패권이 점차 본토로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케네 문명에 속한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던 기원전(B.C.) 1250년경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주도로 트로이 전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기원전(B.C.) 1100년경 번성하던 미케네 문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리스는 거의 400년 동안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이때 도리아인이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도리아인들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이오니아인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B.C.) 8세기경부터 각각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닌 도시국가(Polis)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백여 도시국가들 중 가장 발전된 도시국가는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토스, 테베 등 4개국이었다. 이 시기부터 스파르타가 25년간에 걸친 펠로포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를 제압(B.C. 404년)했던 때까지를 아테네 문명기(B.C. 700년∼400년)라고 부른다.

아테네 문명기였던 기원전(B.C.) 490년과 그로부터 10년 뒤인 기원전(B.C.) 480년에는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발발하였다. 물론 이때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동방국가인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냈다. 우리들은 흔히 그리스가 동방세력의 침입을 막아내고 유럽문명을 지켜냈다며 그리스를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전쟁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했더라면 아마도 유럽문명을 동방의 아시아가 주도했을 것이다.

4. 우리의 토종식물 모데미풀

우리 선조들은 모데미풀을 고산지대 계곡이나 개울가의 습한 곳에서 흔하게 보아왔었다. 그러나 당시는 식물 종(種)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일제치하인 1935년 일본의 식물학자 오이(Ohwi)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전북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 마을 근처 계곡에서 이 식물을 발견했다.

그 후 이 식물에 발견지역의 이름을 붙여 모데미풀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 국민이 아닌 일본인이 발견해서 일까. 꽃말이 ‘아쉬움’또는 ‘슬픈 추억’이다. 참! 모데미풀이 발견됐다는 모데미 마을이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남원시 운봉읍으로 바뀐 곳을 인터넷 등의 자료를 확인한 결과 단지 모뎀골에 모데미 고개라는 지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모데미풀은 주로 백두대간을 따라 중북부 이남지역의 산골짜기에 자생하고 있다. 고산의 주능선 근처나 북사면의 습한 곳에 서식하는 다년생초인 모데미풀은 더위에 몹시 약하다. 그러니 산을 내려오면 살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 이내 죽어버린다. 아름답다고 집에서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이 식물을 채취하여 화분에 옮겨 심는다면 100%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의 채취와 이식(移植)은 귀중한 모데미풀의 개체수를 줄이는 주요인이 되고 있음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싹을 틔울 날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 언 땅이 채 녹기도 전에 살포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다 해빙된 계곡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박깜박 고개를 떨구는 모데미풀, 그 하얀 꽃모습에 산골짝의 바람도 비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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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무릇에 꽃이 피었다.

1. 중의무릇 이름의 유래는?

이른 봄 잔설(殘雪)을 뚫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얼음 위에 핀 꽃이라는 의미의 정빙화(頂氷花)라고도 불리는 '중의무릇'이다. 원래 시골에서 자랐던 나로서도 그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이었다. 그러기에 꽃을 보는 감동이 남달리 컸다. 이 꽃은 산기슭 나무 밑에 다소곳이 피어나 이따금 불어오는 미풍에 몸통을 숙여 연신 절을 하고 있다. 

백합과의 중의무릇은 스님들이 살고 있는 산사(山寺) 주변 산기슭의 초지에 잘 자라고 있다. 그래서 ‘중’이라는 말이 들어갔다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무릇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눈을 뚫고 자라는 식물이라면 아무래도 습기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는 얘기인데…. 무릇을 분석해보면 ‘물웃’으로도 부를 수 있다. 물은 물(水)이고 웃은 위(上)를 의미한다.

그러니 물이 있는 산기슭이나 가장자리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생각된다. 물웃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릇으로 변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중의무릇이라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가! 또 다른 이유로는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안료물감 재료로 이용해서 중의무릇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 외에도 스님들이 거주하는 산사 주변에 피어난 꽃의 키가 아무리 커봐야 스님의 무릎 밖에 닿지 않는다고 해서 중의무릇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2. 중의무릇의 영어이름은 '베들레헴의 노란별'이다.

영어 명칭은 베들레헴의 노란별(Yellow Star of Bethlehem)이다. 중의무릇에 어떻게 ‘베들레헴의 노란별’이란 영어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순전히 주관적 관점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따라 이곳에 도착하여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

중의무릇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처럼 생겼다 해서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왜 노란별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바친 예물 중에 황금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중의무릇(Yellow Star of Bethlehem)

황금은 쇠붙이 중의 쇠붙이이며 귀금속 중의 귀금속이니, 노란색의 황금이 왕 중의 왕이 태어났음을 의미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예수 탄생을 의미하는 별이 노란색이라는 말에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어찌됐든 중의무릇은 마치 별처럼 생겼다, 색만 노란색일 뿐. 이 노란색 별꽃은 오로지 예수만을 숭배하기에 꽃말조차도 ‘일편단심’이 아닌가 싶다.

3. 그리스 신화와 예수 탄생과의 관계 

그리스 신화에는 양의 다리에 뿔을 가진 목양신 판(Pan)이 등장한다. 판은 양떼와 목동들의 신으로 목동들이 부는 피리(Pan-pipe)를 발명하는 등 음악을 좋아했다. 또한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요정들에게 춤을 가르치며 조그만 동굴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여색을 너무 밝히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니 밤이건 낮이건 갑자기 튀어나와 여자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곤 했다. 여기에서 갑작스런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Panic)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이 처럼 공포스런 존재로 여겨진 후 시간이 흐르면서 판은 이교(異敎)를 대표하는 신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판(Pan)이라는 의미는 범(汎)이라는 뜻으로 전체 또는 모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교도의 범신(汎神)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베들레헴 상공에 중의무릇과 같은 노란별이 찬란히 베들레헴의 마구간(馬廐間)을 비추는 가운데 예수가 탄생했다. 이때 천사들이 모든 목동들에게 왕 중의 왕 그리스도가 탄생했음을 알렸다.

이때 목동들의 수호신이던 판(Pan, 사티르Satyr로 대표되기도 함)이 그리스 천지가 흔들리는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 버렸고, 올림포스 신들은 신격(神格)을 잃고 차가운 암흑세계로 쫓겨났다고 한다. 이교신(異敎神)의 대표 격이던 판이 죽었다는 것은 그리스 신화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이교신 판이 만든 '팬 파이프'

목양(牧羊)신 판이 목동들의 피리인 팬파이프(Pan-pipe)를 발명한 내용을 짚어보고 넘어가자. 시링크스(Syrinx)는 처녀의 수호신으로 사냥의 여신이던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요정이었다. 그녀는 아르테미스에게 평생 처녀로 남을 것을 서약하고 어느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시링크스는 너무도 아름다워 아르테미스 여신과 사냥을 할 때면 누구도 두 여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숲의 요정들은 활을 보고 두 여인을 구분하였다. 시링크스의 활은 동물의 뼈로 만든 반면, 아르테미스 여신의 활은 은(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판(Pan)은 들판을 달리다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시링크스(Syrinx)를 보았다. 워낙 여자를 좋아했던 판인지라 아름다운 여인 시링크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판은 요정들과 춤을 추며 속삭이던 현란한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을 아르테미스의 요정으로 살기로 맹세한 이상 남자를 사귈 수 없었다. 그녀는 판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날렵한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판도 그녀를 뒤쫓아 달렸다. 시링크스는 아무리 도망쳐도 뒤쫓아 오는 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요정들에게 접근하는 판. (Nymphs & Satyr, by Bouguereau)

강둑에 도착했을 즈음 그녀는 숨이 차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판에게 잡히면 여지없이 겁탈을 당할 처지이고, 그래서 처녀성을 잃게 되면 처녀의 수호신 아르테미스를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강의 요정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강둑에 도착한 판이 그녀를 껴안으려 하자 그녀의 몸이 점차 갈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의 요정들이 그녀를 갈대로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판은 아름다운 시링크스가 갈대로 변하자 아쉬움과 비참함에 탄식하였다. 그러자 판의 탄식소리가 갈대의 줄기 속을 공명(共鳴)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갈대는 억새와 달리 줄기가 가느다란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다. 그래서 외부소리를 공명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판은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판은 시링크스가 변한 갈대 피리를 그녀의 이름을 붙여 시링크스라 불렀다. 시링크스(Syrinx)는 목동들이 부는 피리의 이름으로 판의 피리라는 뜻의 팬파이프(Pan-pipe)라고도 부른다. 이 악기는 판의 플릇이라는 의미의 팬플릇(Pan-flute)으로도 발전했다.

5. 그리스 로마 신들의 몰락과 예수의 등장 

어쨌든 왕 중의 왕, 즉 신 중의 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Polis)들을 중심으로 줄곧 종교적 우위를 점해 왔던 신화 속의 신들이 한낱 이야깃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계기가 된다. 신화를 그토록 신봉했던 그리스 인들이 누구보다도 기독교를 잘 수용하여 현재 국민의 98%가 그리스 정교회를 믿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해하기 힘든 자연현상을 신들의 행위로 믿어왔던 신앙적 토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원전(B.C.) 700년경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에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처럼 신화로 세상의 섭리를 설명하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당시 제우스(Zeus)는 그리스의 어떤 신보다도 더 추앙을 받아 거의 유일신의 경지에 도달했었다. 또한 하데스(Hades)도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었다.

그러나 서기(A.D.) 1세기에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전파되면서 제우스는 유일신의 지위를 잃게 되었고, 하데스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권리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리스 신화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신화는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는 우리의 교양을 풍부하게 해 주고, 또한 문학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화를 사랑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베들레헴의 노란별, 즉 중의무릇 비늘줄기를 심장질환의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가냘픈 꽃도 자신만의 약효로 우리 인간에게 기여한다고 하니 들꽃이 갖는 의미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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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토종 노랑붓꽃(학명 Iris Koreana)

1. 프랑스 왕조의 상징 붓꽃

붓꽃 중에서도 노랑붓꽃은 학명이 이리스 코레아나(Iris Koreana)이다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랑붓꽃은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 Koreana가 붙었다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셈이다최근 들어 붓꽃을 관상용으로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지만 진정한 들꽃은 들판에 피었을 때 제 모습을 자랑할 수 있다. 내가 촬영한 사진은 모두 민통선 이북 DMZ 인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각시붓꽃은 이른 봄 울창한 수목이 햇볕을 차단하기 전에 재빨리 피어나지만 붓꽃은 5월의 봄 한창 수풀이 우거질 즈음에 꽃을 피운다. 각시붓꽃처럼 붓꽃의 학명에도 이리스(Iris) 여신이 붙는다. 붓꽃의 학명은 Iris nertschinskia이다. 붓꽃의 잎은 칼처럼 길고 날카롭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붓꽃이 기사(騎士, Knight)를 상징한다고 믿어왔다.

꽃잎에 퍼지는 무늬가 무지개를 닮았다 하여 무지를 타고 신의 뜻을 전하는 아이리스 여신의 이름을 학명으로 사용하였다.

용맹한 기사는 프랑스의 루이 왕조를 지켜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루이 왕조는 흰붓꽃을 문장으로 사용해 왔다. 프랑스 시민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루이 왕조는 몰락했지만 붓꽃은 프랑스의 국화(國花)로 자리 잡았다. 일부에서는 프랑스의 국화가 백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앙리와 루이 왕들을 배출한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의 상징이 백합이었던 데서 기인된 것일 뿐 국화는 아니다. 참고로 부르봉 왕가는 1589년 앙리4세가 왕위에 오른 이래 1792년까지 앙리 또는 루이라는 이름이 붙은 왕들을 배출해 왔으며 나폴레옹 퇴진 이후 다시 1814년에서 1830년까지 왕을 배출했던 가문이다.

2. 그리스 신화에서의 붓꽃 학명 '아이리스'

기원전(B.C.) 8세기 중엽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각각 트로이 전쟁 상황과 전쟁이 끝난 이후의 방랑생활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소아시아 서해안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이오니아 지방 사람이었다. 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이리스 여신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과 지상을 오가며 신의 뜻을 전하는 전령신이었다. 

어찌됐든 이리스 여신은 일리아드(Iliad)에서는 제우스를 위해 전령의 소임을 다했으나, 오디세이(Odyssey)에서는 헤라의 전령으로 역할이 바뀐다. 즉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위한 전령이고, 이리스는 헤라를 위한 전령으로 각자의 역할이 분담된 것이다. 이리스는 신들이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할 때 무지개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스틱스 강물을 떠오는 역할도 수행한다.

DMZ 인근 민통선 내부에 피어난 붓꽃

데메테르 여신이 행방불명된 딸 페르세포네를 찾기 위해 제우스 앞에서 스틱스 강의 맹세를 할 때에, 제우스가 인간 여인 세멜레(디오니소스의 어머니)에게 스틱스 강에 걸고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할 때에도 이리스 여신은 스틱스 강물을 주전자에 담아왔었다. 스틱스 강에 걸고 한 맹세는 신들이라 할지라도 어길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제우스는 인간 여인 세멜레가 자신의 광채에 새까맣게 타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제우스는 죽은 세멜레의 몸속에서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 디오니소스는 나중에 포도주의 신이 되었다. 또한 이리스 여신은 제우스가 인류를 멸하기 위해 9일 낮 9일 밤 동안 비를 퍼부어 댈 당시에도 은하수에서 물을 퍼다 제우스에게 갖다 주었다.

주전자에 스틱스 강물을 떠가는 이리스 여신, by Guy Head

이처럼 이리스 여신은 물과 관계가 깊다. 물과 습기가 있는 곳에 무지개는 당연히 나타난다. 또한 그녀는 트로이 전쟁에서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 올림포스 산과 지상을 분주히 오갔다. 물론 무지개를 타고 말이다.

3. 우리 전설에 등장하는 붓꽃

우리의 전설에도 그리스 신화와 흡사한 내용이 있다. 어느 날 하늘의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땅 위에 심부름을 왔다. 그러나 심술궂은 구름이 장난을 쳐 무지개가 걷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꽃이 되었다. 그 꽃이 바로 붓꽃이라는 것이다. 옥황상제의 전령이던 선녀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무지개를 타고 왔으니, 이는 곧 이리스 여신의 행동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민간에서는 붓꽃의 뿌리를 주독(酒毒)을 풀거나 폐렴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 있지만 항상 한의사나 약재사의 처방이 없는 복용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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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잎 무늬를 참조해 학명을 붙여

냉기가 남아있는 숲속은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가시지 않았다. 메마른 풀들 사이를 비집고 앙증맞은 남보랏빛 각시붓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꽃 이파리 하나의 폭과 길이가 12에 불과한 각시붓꽃은 그냥 붓꽃보다 더욱 더 매력적인 가치를 지녔다.

각시붓꽃은 붓꽃과() 붓꽃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가녀린 작은 식물이기에 각시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각시붓꽃은 일반 붓꽃보다 먼저 피어난다. 숲에 나무들이 무성해져 그늘이 드리워지기 전에 따뜻한 햇볕을 자양분삼아 피어나기 때문이다.

꽃대가 붓을 닮은 모습

그러면 붓꽃을 왜 붓꽃이라고 부를까?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꽃이 피기 전의 꽃 모양이 마치 붓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붓꽃속() 식물은 꽃잎의 무늬가 무지개처럼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신화 속의 얘기를 붓꽃의 무늬에 견주어 무지개 여신이자 전령의 여신 이리스(Iris)를 학명에 넣었다. 각시붓꽃의 온전한 학명은 Iris Rossii Baker이다.

 

2. 드라마에서도 아이리스 뜻을 담아

각시붓꽃이 속한 붓꽃속()의 학명은 아이리스(Iris). 한때 지상파 방송에서 '아이리스'라는 타이들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도 메시지 전달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아이리스는 여성으로서 전령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리스(Iris) 여신은 신들의 세계인 하늘과 인간세계인 땅을 연결해주는 무지개를 타고 소식을 전하던 전령의 신이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주로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의 메시지를 전했던 반면, 이리스 여신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여신의 전령으로 활동했다.

 

3. 화랑 관창의 전설이 스며있어 

각시붓꽃에 관한 좀 황당한 전설을 소개해 본다. 삼국시대 후기, 백제와 신라가 황산벌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백제의 계백장군에 번번이 패하던 신라는 화랑 관창이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한 후 전세를 뒤엎는데 성공한다.

계백은 자신의 진영을 향해 단신으로 뛰어든 어린 화랑 관창을 첫 번째는 살려 보냈다. 그러나 관창이 재차 말을 달려 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그의 목을 쳤다. 계백은 관창의 용기를 높이 사 시신을 신라군에 되돌려 준다. 관창의 죽음에 용기를 얻은 신라군이 결국 백제군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관창에게는 무용이라는 연인이 있었다. 무용은 관창과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그리워하다 관창의 무덤가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이른 봄 관창의 무덤 곁 그녀가 죽은 곳에서 다소곳한 모습의 각시붓꽃이 피어났다. 작고 소박한 꽃은 무용의 자태를 닮았고, 날카롭고 기다란 잎은 관창의 칼을 닮았다고 한다.

꽃잎의 무늬를 보면 무지개처럼 보인다.

각시붓꽃은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지만 어떤 조건에서도 결코 쉽게 시들지 않는다. 포기를 나눠 심으면 풍성한 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민간에서는 이 꽃의 뿌리를 타박상과 소화를 촉진시키는데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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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숲 속 요정의 찻잔

숲속 오솔길을 걷노라면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잠시 발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다 은방울꽃을 발견하였다. 연인에게 주는 꽃이다. 유럽에서는 이 꽃을 Lily of the valley(계곡의 백합화)라 부르며, 은방울꽃을 주고받으면 사랑과 행복이 온다고 믿는다. 꽃말은 ‘순결’과 ‘다시 찾은 행복’이다.

조그맣고 하얀 꽃은 금방이라도 딸랑대며 소리를 낼 것만 같다. 파란 잎사귀 아래 방울방울 매달린 꽃들은 마치 요정들의 재잘거림처럼 나의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요정(妖精)들은 어디 있을까? 옛날 한적한 숲속에 밤마다 요정들이 내려와 차를 마시며 놀다 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요정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찻잔에 차를 그득 부어 마시며 놀다 그만 해가 떠오르는 것을 잊어버렸다. 동쪽 산 위에 붉은 빛이 감돌자 요정들은 깜짝 놀라 도망쳤다. 요정들은 찻잔을 풀줄기에 걸어놓은 채 그냥 줄행랑을 쳤는데, 나중에 그 찻잔이 꽃으로 변했다. 그 꽃이 바로 은방울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은방울꽃을 요정의 컵이라고도 부른다.

2. 그리스 신화에서 바라 본 요정

그리스 신화에서 은방울꽃의 요정은 무엇일까? 요정은 영어로 님프라 부른다. 님프는 자연 속에 거주하는 신(神)의 정령(精靈)으로 샘물, 산, 나무, 풀 속에 깃들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들 님프는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 깊고 강력한 성적 욕망의 전형적인 대상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님프(Nymph)라는 단어에서 색정증(色情症)의 여자를 의미하는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는 단어가 파생되기도 했다. 님프는 젊고 아름다운 소녀를 대신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적욕망이 반영된 신의 정령이었다.

님프(Nymphaeum), by (브그로)Bouguereau

그러므로 여성이 사용하는 향수에 은방울꽃의 부르지오날 성분이 포함되지 않았을 리 없다.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유럽에서는 은방울꽃의 향수를 성스러운 향기라 하여 연모하는 사람에게 뿌리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아마도 부르지오날 성분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러한 은방울꽃의 성분을 알리 없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님프를 소녀로 인식하여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거꾸로 된 발상이 아닐까? 오히려 님프를 소년으로 투영시켜 고대 그리스 여성들이 좋아했다면 말이 되는데..... 

3. 유럽에서의 은방울 꽃

프랑스에도 성(聖)레오나드 전설이 있다. 레오나드는 용감한 젊은이로 약혼녀 마이야를 뒤로하고 3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았다. 수련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 불을 내뿜는 큰 독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레오나드는 3일 낮 3일 밤을 싸워 독사를 죽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독사의 날카로운 이빨에 부상을 당했다. 그는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거대한 독사를 죽인 모든 명예를 자신의 약혼녀 마이야에게 넘겨 달라는 기원을 하면서 죽어갔다.

숲의 님프(Nymph)는 용감한 레오나드의 죽음을 슬퍼하며 풀 위에 방울방울 떨어져 있던 레오나드의 피를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은방울꽃의 조용한 속삭임은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프랑스에서는 5월 1일 은방울꽃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또한 결혼식 때 신부에게 주는 꽃이기도 하다. 사랑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4. 성경에서 은방울 꽃이란?

성경(아가 2:1)에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계곡의 백합화로다.(I'm a rose of Sharon, a lily of the vally.)”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계곡의 백합화’는 짧은 소견이지만 은방울꽃의 영어 이름이 ‘릴리 오브 더 벨리(Lily of the valley)’인 점을 감안한다면 은방울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도 무궁화 꽃이라는 단어다. 하지만 그곳에 무궁화 꽃이 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러한 용어들은 샤론의 들판에 핀 꽃들을 총칭하는 집합명사의 개념으로 쓰였을 것이기 때문에 영어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방에서는 은방울꽃을 강심, 이뇨에 활용한다. 심장쇠약, 신장기능 향상, 불안․초조․불면 등 신경쇠약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부종이나 타박상에도 약재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용하려면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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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열매 오디

1. 사랑의 야반도주

피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젊은 남녀가 이웃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사는 집 주변에는 아주 높은 성벽이 가로막혀 두 가족의 왕래가 차단되었다. 이 두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눈길을 마주치다 그 회수가 잦아지자 은연중 사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부모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짓으로 몸짓으로 은밀히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의 여신 셀레네가 중천에 떠올라 어둠을 쫓아내자 이들은 외로움에 성벽을 더듬거리다 조그만 틈새를 발견했다. 매일 밤 두 남녀는 벽 틈새에 입을 대고 사랑을 속삭이곤 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 로마 시대에는 아우로라Aurora로 불렀으며 영어 발음으로는 오로라)가 어둠을 몰아낼 때까지 그들의 달콤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이 이뤄지도록 이 벽이 무너지기를 얼마나 염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두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야반도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다음 날 저녁 바빌로니아 왕 니누스 왕릉 옆 커다란 뽕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샘 강 옆에 우뚝 서 있던 뽕나무는 잘 익은 하얀 오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란 오디가 익으면 하얗게 변했었다고 한다.  

2. 피의 절규

다음 날 어둠의 신이 대지를 감싸오자 아름다운 여인 티스베는 화려한 베일(veil)로 얼굴을 가리고 피라모스와 약속했던 뽕나무 밑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적막한 푸른 달밤이 무섭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대담하게 왕릉 곁으로 다가갔다.

이때 사자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뜯어 입가에 피가 흥건한 채 물을 마시려고 강가를 어슬렁거렸다. 달빛에 사자가 어렴풋이 보이자 티스베는 다급히 근처 동굴로 몸을 숨기느라 머리에서 베일이 벗겨지는 줄도 몰랐다. 베일은 바람에 펄럭이며 땅위에 떨어졌다. 물을 마신 사자가 풀밭에 뒹구는 베일을 발견하고 입과 발톱으로 찢어대기 시작했다.

사자의 입에 묻어 있던 벌건 피가 찢겨진 베일에 스며들었다. 얇고 가냘픈 베일을 장난감삼아 풀밭을 뒹굴던 사자는 시간이 흐르자 싫증이 났는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티스베는 동굴에 숨어 사자가 돌아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피라모스는 가족 몰래 성을 빠져 나오느라 티스베보다 훨씬 늦게 강 옆 뽕나무에 도착했다. 뽕나무에 도착하기 전 니누스 왕릉 옆에 선명하게 찍힌 사자 발자국을 보았던 터라 티스베의 안위를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사랑하는 티스베 대신 찢겨진 베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밝은 달빛은 갈가리 찢겨진 베일에 얼룩진 핏빛을 더욱 선명하게 비췄다.

피라모스는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티스베가 사자의 먹이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피라모스는 붉은 베일을 주워들고 슬프게 울부짖었다. "베일아! 베일아! 네가 티스베의 피를 마셨으니 이제 내 피도 마셔라.”하고 외치며,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자신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베일을 흥건히 적신 다음 뽕나무 밑의 대지로 스며들었다. 뽕나무는 피라모스의 검붉은 피를 묵묵히 빨아들였다.

3. 두 남녀의 비극적 결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티스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조심조심 동굴 밖으로 나왔다. 뽕나무 밑에 다다르자 그녀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피라모스가 찢어진 베일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사태를 짐작하였다. 피라모스는 가늘게 눈을 떠 그녀를 바라보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피라모스가 죽자 티스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신이시여! 우리의 사랑은 죽어서도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도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시어 한 무덤에 합장하도록 해 주십시오. 오디나무야! 네가 나의 사랑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고 곧 내가 죽는 것도 지켜 볼 것인즉, 사람들이 우리가 흘린 피를 기억하도록 너의 하얀 열매를 검붉게 물들여다오.”

기도를 마친 티스베는 피라모스의 피묻은 단검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비극에 간 두 남녀를 지켜 본 올림포스 신들은 티스베의 기도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뽕나무의 파란 열매가 익어가면서  붉어진 뒤, 나중에는 핏빛 검붉은 색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가 부모들도 두 남녀의 유해를 합장해 주었다. 그들은 죽어서야 사랑을 이룬 것이다. 

4.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

로마의 작가 오비디우스(Ovidius, B.C.43∼A.D.17)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 등장하는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시리아의 전설을 옮겨 적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현재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에 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했었다. 바꿔 말하면 소아시아의 도시국가(Polis)들이 고대 그리스 문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그리스 신화의 내용 자체가 터키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시리아는 소아시아의 터키와 인접해 있다. 그러니 시리아의 전설도 그리스 신화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로마는 자신들의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고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바꿔 로마화했다. 

우리는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4대 비극(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드)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바로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신화에서 기인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이야기는 기원전 오비디우스가 태어날 즈음에 유행했던 내용이고, 그 이후 16세기에 셰익스피어가 이 전설을 신화로 접하고 희곡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5. 약효도 뛰어난 오디 열매 

당분이 많이 함유된 오디의 풍부한 즙은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오디의 약효를 흰 머리카락을 검게 만들고 노화를 방지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사람의 혼을 안정시켜 정신을 맑게 만든다고 적고 있다.

오디는 비타민C의 함량이 높아 신경쇠약, 피로회복, 숙취해소, 고혈압, 기관지 질환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뇨병과 노화방지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어 최근 많은 사람들의 기호식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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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Albergue는 스페인어 사전에서 사람의 숙박소를 의미하며, 동물들에게 한정해서는 동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숙박지이다.  그러므로 산티아고 까미노에서는 한 마디로 순례자 숙소로 통한다.  알베르게는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숙박지라고 보면 된다. 

나바레테 시립 알베르게

1. 알베르게에서 식사 조리도 가능한가?

까미노(camino, 순례길) 주변에는 알베르게 뿐만 아니라 카페테리아Cafeteria나 바Bar들이 마을마다 들어서 있다. 그곳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순례자 메뉴'가 있다. 이 메뉴는 순례자들에게 대략 10유로에 판매되고 있으며, 와인과 식욕을 돋구는 간단한 요리, 그리고 메인 요리,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위 풀코스 요리에 해당된다. 

그러나 절약하기 위해, 또는 한국식으로 먹기위해 직접 조리하려면 알베르게의 주방을 이용하면 된다. 알베르게는 대부분 주방용구와 그릇, 스푼까지도 구비되어 있으므로 순례자는 인근 수퍼마켓에서 식료품을 구입해 조리해 먹으면 된다. 특히 스페인의 농산물은 저렴하여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 조리하기 보다 여러 명이 더치페이하여 조리하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순례자 서너 명이 어울리게 되며, 알베르게에도 함께 투숙하여 각자 2~3유로, 많게는 5유로 정도를 갹출, 요리를 하면 저녁식사 뿐만 아니라 남은 음식을 그 다음날 아침식사로 이용할 수 있어 거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직접 조리를 선호한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식사는 전날 저녁 장을 볼 때 과일이나 빵 등을 준비하여 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7명이 의기투합하여 조리하는 모습
한국식 닭도리탕을 하려고 불판에 올린 모습

 조리는 일행 중 요리솜씨가 있는 사람이 솔선수범하여 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옆에서 보조하거나 식사 후 설겆이를 한다. 주방용구는 알베르게 비품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씻어 가지런히 정리해 놓아야 다음 사람이 쓸 수 있다. 또한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면 우리보다 앞서 다녀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쌀과 갖가지 음식재료가 남아있어 이것을 활용하여 절약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방시설이 없는 곳도 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는 돈을 받고 직접 요리를 순례자에게 제공하기도 하며, 어느 곳에서는 기부제로 기부받은 돈으로 숙식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서로 합심하여 요리를 하고 설겆이도 마쳐야 한다. 그리고 산티아고를 대략 50여 km 남겨둔 지점부터는 주방은 있으되 솥과 그릇 같은 용구가 없어 어떤 순례자는 조그마한 냄비를 갖고 다니기도 했다.  

 

2. 알베르게마다 종류가 다른가?

알베르게는 크게 4종류로 나뉘다. 첫 번째가 시립 알베르게, 즉 무니시팔(Municipal Albergue)이다. 무니시팔은 영어의 municipal과 동일하다. 가격은 5유로에서 6유로다. 실제로 숙박료는 5유로, 침대 종이시트 1유로가 합해져 6유로를 받는 곳이 많다. 요즘 알베르게도 예약을 한다고 하는데, 시립 알베르게는 도착한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하기 때문에 예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을마다 1개소 이상씩 존재한다. 

둘째는 공립 알베르게, 즉 뿌블리꼬 (Publico Albergue)다. 시립과 거의 동일하다. 영어로 Public이다. 대표적인 공립 알베르게는 아스또르가Astorga의 대형 알베르게다. 언덕을 올라와 옛 로마성벽위에 우뚝 선 첫번째 알베르게가 그곳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공립은 말 그대로 공공기관 등에서 공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므로 시립 알베르게와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동상 뒤편에 아스또르가 공립 알베르게 입구가 보인다.

셋째는 구 알베르게, 즉 빠로끼알(Parroquial Albergue)이다. 즉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한다는 의미로 영어의 Parish 또는 District에 해당된다. 이러한 알베르게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기부제 알베르게는 숙식비를 한꺼번에 알아서 기부하는 형태이다. 나의 경우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투숙하면 무조건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요즘 예약이 허용된다는 사설 알베르게, 즉 쁘리바도(Privado Albergue)가 많이 늘어났다. 쁘리바도는 영어의 Private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사설 알베르게라는 곳으로 영리적 목적으로 운영되므로 숙박비가 기본 10유로 정도다. 물론 쁘리바도 알베르게에서도 요리가 가능하다, 요리를 못하는 곳도 있지만. 거의 모든 알베르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수 요리가 가능하다. 

 

3. 알베르게의 침대 배열 등 구조는?

거의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2층 침대 구조로 되어 있다. 1층 침대와 2층 침대 사이가 낮아 사람이 앉아 있기에도 불편할 정도이기 때문에 1층에 앉으면 고개를 숙이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알베르게의 특성상 밤에만 순례자가 입실하기 때문에 누워 잠만 잘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낮게 한 것 같다. 키가 큰 나로서는 앉아서 배낭을 꾸릴 때 엄청 불편했다. 

아르수아의 시립알베르게 내부
부르고스의 시립 알베르게 내부

알베르게는 남녀 공용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구분이 없어 속옷을 갈아 입을 때는 샤워장이나 침낭 속에서 주로 갈아 입는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2층, 여자는 1층을 배정하며, 나이가 많으면 1층, 부부는 1층과 2층을 배정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일행이 아니라고 해야 두 명 모두 1층을 배정받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상태가 좋은 곳만 촬영했기 때문에 2층에 안전바가 있으나 대부분의 침대 2층에는 안전 바가 없어 자칫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2인 1실의 Azofra Municipal Albergue
아소프라의 시립 알베르게 내부 2인1실

어쩌다 1층만 있는 알베르게를 만나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아소프라Azofra의 시립 알베르게는 2인 1실로 꾸며져 있다. 그 동안 북적거림 속에서 생활하다 우리 부부만의 공간을 갖게 되자 너무 좋았다. 그런데 부부가 아닌 남녀를 이런 방에 같이 들어가도록 하면 어찌될까? 그래서 알베르게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트인 공간이 됐나 보다. 

알베르게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은 반듯하게 눕지 말고 측면으로 누워 잔다든가 하는 등의 배려가 필수적이고, 소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귀막이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다. 저녁 10시가 되면 무조건 소등하여 순례자들이 잠 자리에 들도록 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순례자들도 많기 때문에 취침시간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3. 알베르게를 이용하려면?

순례를 출발하기 전, 생장피드포르에 순례자사무실이 따로 있다. 그곳에서 순례자여권이라 부르는 끄레덴시알Credencial을 만들어, 각 마을마다 바bar나 성당, 그리고 잠을 자는 알베르게에서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끄레덴시알은 순례가 끝난 뒤 산티아고 대성당 곁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증서를 받을 때 제출해야 한다. 이 끄레덴시알, 즉 순례자 여권이 없으면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없다. 마을의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순례자 여권을 제출하고 숙박부에 인적사항을 기재한 뒤, 자원봉사자가 스탬프를 순례자 여권에 찍어 준 다음에야 침대가 배정된다.   

끄레덴시알은 각 마을의 알베르게나 성당, 순례자사무소 등에서 약간의 돈(약 1~5유로 기부)을 지불하고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 포르투갈길을 걸을 때 그냥 조그마한 노트를 사서 맨 앞쪽Front page에 인적사항, 여권번호, 국적, 출발지를 영어로 기록하고, 그 다음 쪽next page부터스탬프를 받고 다녔는데 인정되었다. 그러나 모험은 금물이다. 시립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자원봉사자가 끄레덴시알Credencial과 여권Passport을 요구한다. 간혹 여권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여권 사본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대학순례용 끄레덴시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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