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비구니 스님들 고행을 자처하다.
프랑스 생장에서 첫발을 내디디면 힘찬 '산티아고로 가는 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을 걷고 있을 즈음 눈에 띄는 두 분 승려! 그 분들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하며 기념촬영을 청했다. 두 분 승려는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 고행을 자처하고 있었다. 가톨릭교도로서 불교인의 참모습을 보는 듯 하여 가슴이 뿌듯해 졌다.
고행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 원인과 분석을 하기에는 지면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다. 그냥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하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제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수원교구의 이기수 요아킴 신부님이시다. 이기수 요아킴 신부님께서는 "불교는 고통으로 인하여 해탈하고, 기독교는 고통을 통하여 부활한다."라고 말했다. 종교적으로 깊이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 뜻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 우문에 현답을 하다.
불교 승려가 가톨릭 성지를 순례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 스님들께서 잘 걷고 계실까? 하는 생각에 까미노(camino,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님은 어디쯤 오십니까?"하고 묻곤 했다. 드디어 한 바(Bar)에서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데, 지영 스님이 바 앞의 철제 의자에 앉아 계셨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드리고 잠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스님! 불교 지도자이신 스님들께서 가톨릭교도의 길로 알려진 까미노를 걷고 계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대답은 간단했다. "성인을 찾아가는 길이잖아요." 스님께서는 성인의 위대한 업적은 종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역시 우문에 현답이다.
# 친절과 사랑을 베풀다.
뻬르돈Perdon 언덕을 향해 오르기 시작할 즈음 한 구멍가게에서 스님이 나를 보고 묻는다. 나에게 말을 건네며 반가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리도 길고 키도 크신 분이 아직 여기 계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웃으며 "스님 두 분 다시 만나려고 천천히 걸었죠."라고 말했다. 스님들이 웃으신다. 그리고 네게 구멍가게에서 방금 산 오렌지와 사과를 주신다. 친철함과 더불어 나눔도 실천하고 있었다. 오는 말이 고우니 가는 말도 곱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의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려는데 앞에 두 분 스님께서 앉아 계신다. 두 분은 성모송을 부르며 성당 외부의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데에도 두 손을 합장하고 뒤를 따랐다. 남의 종교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 종교를 몸소 체험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두 분 스님! 종교에 경계와 반목이 없음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날 밤 두 분 승려를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렸다.
# 오욕 중 하나만 버려도 큰 거여요.
지인 스님이 내가 어머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순례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게 한 말이다.
"신께서 어머니의 영혼을 틀림없이 보살피실 겁니다. 어머니께서도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계실테니까요. 인간이 가장 떨쳐버리기 힘들다는 오욕(식욕, 수면욕, 색욕, 탐욕, 명예욕)중에서 생리적 욕구 3개를 제외하면 탐욕과 명예욕이 남는답니다. 그런데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 교수직도 그만두고 어머니의 영혼을 모시고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탐욕과 명예욕까지 버린 겁니다. 오욕 중 하나도 버리기 힘든데 그걸 다 버리고 이 길을 걷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리고 레온Leon에 도착했을 때 지인 스님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 내용을 소개해 본다.
"원래 계획은 되도록 가톨릭의 저녁미사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걸음이 늦고 많이 지쳐서 이따금 들리는 작은 성당에서 기도드려요. 그리고 묘지 주변을 지나칠 때에는 그 분들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그럴 때마다 당연히 귀하 어머님의 영면을 기원했고, 앞으로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환한 미소와 열린 마음으로 저희를 반겨주시고, 정성을 다해 저희를 축복해 주셔서 앞으로 남은 여정을 흔연하게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하는 여정 늘 축복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 인연은 이어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아마 내가 2일 정도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첫날 생장에서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이 이제야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때 허전한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보니 지인 스님의 문자가 한참 전에 와 있었다. 즉시 성당 옆의 분수대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뛰어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두 세 번을 허탕치다 늦은 밤에야 만날 수 있었다.
두 분 스님은 내가 다시 포르투갈 파티마를 둘러보고 포르투(Porto)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됐던지 비상약품과 된장 등을 건네주며 축복을 기원해 줬다. 그리고 귀국하면 꼭 한 번 사찰로 놀러오란다. 스님들의 염려덕분으로 포르투갈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종교와 무관하게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찾아 순례를 계속하신 두 분 스님들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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