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숲 속 요정의 찻잔
숲속 오솔길을 걷노라면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잠시 발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다 은방울꽃을 발견하였다. 연인에게 주는 꽃이다. 유럽에서는 이 꽃을 Lily of the valley(계곡의 백합화)라 부르며, 은방울꽃을 주고받으면 사랑과 행복이 온다고 믿는다. 꽃말은 ‘순결’과 ‘다시 찾은 행복’이다.
조그맣고 하얀 꽃은 금방이라도 딸랑대며 소리를 낼 것만 같다. 파란 잎사귀 아래 방울방울 매달린 꽃들은 마치 요정들의 재잘거림처럼 나의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요정(妖精)들은 어디 있을까? 옛날 한적한 숲속에 밤마다 요정들이 내려와 차를 마시며 놀다 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요정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찻잔에 차를 그득 부어 마시며 놀다 그만 해가 떠오르는 것을 잊어버렸다. 동쪽 산 위에 붉은 빛이 감돌자 요정들은 깜짝 놀라 도망쳤다. 요정들은 찻잔을 풀줄기에 걸어놓은 채 그냥 줄행랑을 쳤는데, 나중에 그 찻잔이 꽃으로 변했다. 그 꽃이 바로 은방울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은방울꽃을 요정의 컵이라고도 부른다.
2. 그리스 신화에서 바라 본 요정
그리스 신화에서 은방울꽃의 요정은 무엇일까? 요정은 영어로 님프라 부른다. 님프는 자연 속에 거주하는 신(神)의 정령(精靈)으로 샘물, 산, 나무, 풀 속에 깃들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들 님프는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 깊고 강력한 성적 욕망의 전형적인 대상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님프(Nymph)라는 단어에서 색정증(色情症)의 여자를 의미하는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는 단어가 파생되기도 했다. 님프는 젊고 아름다운 소녀를 대신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적욕망이 반영된 신의 정령이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사용하는 향수에 은방울꽃의 부르지오날 성분이 포함되지 않았을 리 없다.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유럽에서는 은방울꽃의 향수를 성스러운 향기라 하여 연모하는 사람에게 뿌리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부르지오날 성분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러한 은방울꽃의 성분을 알리 없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님프를 소녀로 인식하여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거꾸로 된 발상이 아닐까? 오히려 님프를 소년으로 투영시켜 고대 그리스 여성들이 좋아했다면 말이 되는데.....
3. 유럽에서의 은방울 꽃
프랑스에도 성(聖)레오나드 전설이 있다. 레오나드는 용감한 젊은이로 약혼녀 마이야를 뒤로하고 3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았다. 수련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 불을 내뿜는 큰 독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레오나드는 3일 낮 3일 밤을 싸워 독사를 죽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독사의 날카로운 이빨에 부상을 당했다. 그는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거대한 독사를 죽인 모든 명예를 자신의 약혼녀 마이야에게 넘겨 달라는 기원을 하면서 죽어갔다.
숲의 님프(Nymph)는 용감한 레오나드의 죽음을 슬퍼하며 풀 위에 방울방울 떨어져 있던 레오나드의 피를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은방울꽃의 조용한 속삭임은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프랑스에서는 5월 1일 은방울꽃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또한 결혼식 때 신부에게 주는 꽃이기도 하다. 사랑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4. 성경에서 은방울 꽃이란?
성경(아가 2:1)에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계곡의 백합화로다.(I'm a rose of Sharon, a lily of the vally.)”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계곡의 백합화’는 짧은 소견이지만 은방울꽃의 영어 이름이 ‘릴리 오브 더 벨리(Lily of the valley)’인 점을 감안한다면 은방울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도 무궁화 꽃이라는 단어다. 하지만 그곳에 무궁화 꽃이 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러한 용어들은 샤론의 들판에 핀 꽃들을 총칭하는 집합명사의 개념으로 쓰였을 것이기 때문에 영어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방에서는 은방울꽃을 강심, 이뇨에 활용한다. 심장쇠약, 신장기능 향상, 불안․초조․불면 등 신경쇠약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부종이나 타박상에도 약재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용하려면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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