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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벌거벗은 아름다움, 85x118cm, 브그로 作

 

브그로의 작품세계는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인체를 정밀하다 못해 실물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하는 파리의 아카데미즘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낭만적인 상상에 빠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브그로의 작품 '해변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인체와 자연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상상을 해 봅니다. 나의 상상을 아래에 글로 옮겨 봅니다. 

색채와 필치가 어우러져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예술의 영역에서, 화가 '브그로'는 그림 같은 해변에서 맑고 흔들리는 파도의 매혹적인 포옹에 몰두하는 젊은 여성의 묘사, 즉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을 세상에 선물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형태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이 그림은 우리를 낭만의 영역에 빠져들게 하고 주변 천상의 아름다움과 캔버스에 우아하게 빛나는 여성의 매혹적인 나신 사이의 심오한 연관성을 탐구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브그로'의 세밀한 구도에 떨어질 때, 우리는 고요한 해안선으로 이동합니다. 금빛 모래는 태양의 부드러운 손길에 입맞춤을 받으며 끝없이 펼쳐져 있고, 푸른 물결은 생명으로 반짝이는 그들의 영원한 춤을 해변을 따라 엮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은 조화로운 자연의 심포니, 은혜와 유혹의 화신입니다.

붓질할 때마다 '브그로'는 여성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태양의 애정 어린 애무에 의해 우윳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흠잡을 데 없는 피부는 은은한 신비의 빛을 발산합니다. 그녀의 구불구불한 긴 머리는 뒤에서 매혹적인 파도의 흔들림을 흉내내듯 짠 바람에 장난스럽게 춤을 춥니다. 깊은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은 그녀 앞의 푸르스름한 광활함을 반영하며, 그 안에 신비와 그리움의 기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매혹적인 얼굴에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 즉 그녀의 영혼 깊은 곳을 반영하는 미소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 자유,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자연계와의 깊은 연관성을 속삭이는 천사의 미소입니다. 그녀가 모래 기슭을 밟을 때마다, 그녀의 근심 걱정을 모르는 정신은 파도의 리듬과 얽혀 기쁨과 고요함의 섬세한 교향곡을 만들어 냅니다.

맑은 파도가 그녀의 발치를 부드럽게 두드리자, 젊은 여성은 바다의 장난스러운 유혹에 굴복합니다.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한 춤이 되고, 인간의 형태와 자연의 경계가 조화로운 결합으로 흐려집니다. 이 순간, 그녀는 대지, 물, 하늘의 영원한 만남의 장소인 해변의 영원한 매력을 한껏 발휘합니다.

브그로의 걸작은 그 여성과 그 주변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포착할 뿐만 아니라 상징성의 깊은 곳을 파헤치도록 초대합니다. 맑은 물결은 삶의 썰물과 흐름을 상징하며, 회춘과 변화의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파도가 해안선을 형성하듯이, 우리 삶의 경험과 만남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또 형성합니다.

게다가, 여성 자신은 육체적인 아름다움 이상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자유와 자기 표현의 정신을 구현하여, 우리에게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포용하고 내면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기념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억압을 버리고,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삶의 신비한 물결과 함께 춤을 추라고 손짓합니다.

브그로의 걸작 '해변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은 맑고 흔들리는 해변의 물결에 매혹적으로 빠져드는 젊은 여성을 묘사함으로써 우리를 낭만과 사랑의 여행으로 초대합니다. 여행으로의 초대는 우리가 인간의 정신과 자연의 매력 사이에 갖고 있는 영원한 연관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손짓하는 파도를 껴안고, 주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삶의 춤에 몰입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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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Mourning, 1888년 브그로 作

 

카인과 아벨은 구약 성경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낳은 아들들입니다. 형 카인은 농부였고, 동생 아벨은 목동이었습니다. 이들은 땀의 결실을 하느님께 바쳤는데,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았으나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화가 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합니다. 아마도 당시 사회상이 유목과 농경으로 분화되어 서로 대립했던 것이 비유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위 명화는 아담과 하와(이브)가 카인에 의해 저질러진 인류 최초의 살인에 대해 죽은 아벨을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이 명화는 인간에 의한 첫 살인이자 인간의 첫 죽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그로(부게로)의 이 그림은 그의 둘째 아들이 하늘나라로 간 뒤에 그린 것입니다.

브그로는 불행하게도 5명의 자녀 중 4명을 자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슬픔을 간직한 화가입니다. 부모로서 비통한 심정을 아담과 하와의 심정과 견줘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1905년 막내아들마저 잃게 되자 큰 슬픔과 비통함에 잠겨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지병이던 심장병과 폐에 무리를 끼치게 되자 80세의 나이로 아내의 품에 안겨 눈을 감습니다. 그는 생전 826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행방을 모르는 작품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윌리엄 아돌프 브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년)는 비너스의 탄생, 비블리스 등과 같은 신화적 그림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첫 비탄'과 같은 종교적인 그림도 그렸습니다. 브그로는 19세기 파리 아카데미의 고전주의 전통을 계승,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신중하고 세밀한 구성과 채도가 낮으면서 무거운 중간 색조를 통해 클래식하게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의 회화기법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아카데미즘의 특징인 탁월한 터치와 빛나는 채색을 보여 줬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인체의 세밀한 묘사와 은은한 색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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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브그로 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 명화의 제목 '새벽'처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가 밤의 장막을 걷어내고 여명의 빛을 불러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하늘거리는 하얀 그녀의 옷깃이 검은 밤의 장막을 하얗게 변색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한 환상마저 불러 일으킵니다. 춤추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면서 고개 돌려 꽃의 향기를 맡는 자태는 새벽의 상쾌함을 우리에게 한껏 선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을 때면 브그로의 그림을 봅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인체와 배경의 미세한 부분과 색조의 신비스런 미묘함까지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경을 이루는 그림자의 명암까지도 은은하고 부드럽게 색채의 마법을 화폭에 담아내기에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면서도 육체의 신비감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명화를 남기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스케치를 하며 형태를 묘사했고, 데생으로 양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데생으로 향후 그리게 될 유화의 구도와 색감을 상상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역작을 남기기 위해서는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노력의 대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런 화가였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의 데생을 하나 아래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데생입니다. 위의 유화와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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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guereau 作,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1879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아프로디테(Aprodite)는 태초의 신으로 하늘의 신이었던 우라노스(Uranos)의 거세된 남근의 핏방울에서 탄생했다.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남근을 잘라 넓은 바다에 던졌다. 여기에서 떨어진 우라노스의 피가 바닷물과 결합하여 거품이 끓어올랐고, 그 거품에서 사랑의 여신, 미의 여신, 섹스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 

아프로디테는 로마시대에 이르러서 이름이 비너스(Venus)로 바뀐다. 로마는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의 신들을 로마화하면서 신들의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남성의 심볼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에 남성들이 성적으로 가장 원하는 여성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해석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모든 남성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미의 여신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 사랑, 섹스, 정복 등 그들이 갈구했던 욕망을 아프로디테를 통해 여과없이 표현해 냈다. 고대 인류가 어떠한 여신을 매개체로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던 격렬한 욕망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만큼 아프로디테는 사랑에 관한한 격정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신들은 물론이고 인간 남성과도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아프로디테의 행적은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회화풍은 여성 누드화가 가장 인기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실제 사회에서의 나체와 누드는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화가들 만큼은 예외적이었다. 신화를 주제로 삼아 여신들의 누드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여신 중에서도 아프로디테(비너스)의 누드는 여러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단골 모델이 되었다. 위의 회화도 비너스가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하여 조개껍데기를 타고 키프로스에 도착하는 장면을 누드화한 것이다. 

위 걸작은 르네상스 시대의 영향을 받았지만 가슴과 아래를 손으로 가리지 않는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온 은은한 빛이 그녀의 몸을 신비스럽게 비추고 있다. 긴 머리카락, 육감적인 몸매, 빛나는 여성의 살결 등 신비스러운 모습의 비너스는 남성들에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화신이었다. 브그로는 도자기와 같이 매끈하고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 표현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화가였다. 

왼쪽 중앙의 검은살결의 남성은 성(sex)의 대명사 판(Pan)의 모습이다. 판은 거대한 남근을 앞세우며 아프로디테를 바라보고 있어 성적인 아름다움의 여신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세 명의 바다의 요정들은 그녀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질투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하늘에서는 에로스를 닮은 천사들이 그녀의 탄생을 기뻐하고 있으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들인 트리톤들은 고둥나팔을 불며 그녀의 관심을 끌려하고 있다.  이처럼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는 남성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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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그로 作, 비블리스(Biblis), 1884

 

밀레토스는 크레타 섬에서 지금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로 건너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우고 강의 신(江神)의 딸인 키아니에와 결혼하여 쌍둥이 남매인 '카우노스'와 '비블리스'를 낳습니다.

비블리스(Biblis)는 다른 남성에거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오빠인 카우노스만을 사랑하게 됩니다. 항상 오빠를 그리워하던 비블리스는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오빠인 카우노스로부터 박절하게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제어할 수 없던 비블리스는 오빠를 향한 사랑을 불태워갑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오빠 카우노스는 고향을 떠나 카리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웁니다.

떠나버린 오빠를 그리워하던 비블리스는 평생 오빠를 찾아 헤맸습니다. 아무리 찾아다녀도 오빠를 찾을 수 없던 비블리스는 절망하여 땅바닥에 쓰러집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했던 그녀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에 자신의 몸도 녹아내려 샘이 되었습니다. 그 샘이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비블리스의 샘입니다. 아직도 눈물처럼 샘물이 펑펑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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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작품인 'Biblis'는 안개처럼 은은한 터치로 인체의 신비를 표현했습니다. 누가 알까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 했던 비블리스! 그녀의 상처입은 영혼과 육신을 어느 누가 이처럼 잘 표현해 낼 수가 있을까?하는 경이감마저 드는 명화입니다.

땅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그녀를 토닥거리며 위로해 줄 사람은 결코 찾을 길 없어 더 애처로워 보이는 슬픔의 상징입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한 순간 육신이 무너져 내려 물이 돼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지는 태양처럼 스러져가는 낭만주의의 끝자락을 장식했던 부그로는 해부학에 충실한 묘사와 안정감을 바탕으로 펼쳐진 구도로 사실주의적 정교함과 사람의 감성을 뒤흔드는 신비주의적 감수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풍을 바탕으로 그는 프랑스 국립미술원의 종신회원으로서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명예 작위까지 받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했던 그는 잊혀진 화가가 되었지만, 20세기 후반 그의 화풍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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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올림픽의 탄생과  중단

고대 올림픽은 고대 도시국가(Polis)들이 서로의 단합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벽화에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벽화 등에는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나체로 경기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 사이에 열린 올림픽은 BC776~AD393년 동안 4년에 한번씩 고대 올림픽이 열렸다. 당시 그리스人들에게 올림피아 경기는 군사활동을 목적으로 하고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 올림픽이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은 393년 지중해 연안을 장악한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그리스도교를 국교(國敎)로 정하면서 부터였다.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올림픽은 올림피아 神들을 위한 잔치로 보였고,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우상숭배나 같았다. 그로 인해 고대 올림픽은 1200년에 걸친 막을 내리게 된다. 

2. 근.현대적인 올림픽의 탄생

현대 올림픽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시작된다. 프랑스 교육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바롱(Pierre de Coubertin)은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을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게 함으로써, 국제 평화와 우호를 증진하고자 했다. 쿠베르탱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며, 1894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를 창립하여 현대 올림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현대 올림픽의 첫 대회는 고대 올림픽이 치러졌던 대표적인 폴리스였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896년 개최되었다. 이때 참가한 국가는 14개국이었으며, 43개의 종목에서 경기가 열렸다. 이후 고대 올림픽처럼 4년에 한번씩 개최되어 온 올림픽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1924년부터 동계 올림픽이 추가로 개최되어, 현재는 여름과 겨울 올림픽이 번갈아 열리고 있다.

3. 고대 선수들의 나체 경기 기원

올림픽의 기원과 역사는 그렇다 치고 고대 올림픽에서는 왜 선수들이 나체로 경기에 임했을까? 그리스의 벽화 등에 그려진 나체의 선수들에 대한 기원을 알아보자.

물론 처음부터 고대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나체로 경기에 임한 것은 아니었다. BC 1세기 그리스 작가 디오니시오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고대 올림픽 최초의 나체선수는 스파르타 출신 아칸토스다. BC 720년 제 15회 올림픽에 장거리 달리기에 출전한 아칸토스가 허리옷을 벗어버리고 나체로 달려서 우승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선수들은 올시포스를 모방하여 나체로 경기를 했으며, 선수들 사이에서는 나체로 달리기를 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록은 제 15회 올림픽 단거리 경주에 출전한 오로시포스가 페리조마(perizoma)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우승을 놓치자 이 경기를 관장하던 아테네의 집정관이 모든 선수에게 나체경주를 허용했다는 것이다. 페리조마는 초기 그리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국부를 가렸던 일종의 옷이다. 그 뒤로 올림피아에서는 BC 500년 이후 나체 경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BC 4세기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이 주장하는 이상국가에서는 여성들도 나체로 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강인한 여성상을 추구해온 스파르타에서는 여성들만의 나체경기가 치러졌다. 트레이너도 역시 나체로 입장해야 했다. 경기에 출전한 아들의 트레이너로 변장한 어머니가 아들의 승리에 흥분해 펜스를 뛰어넘다가 쓰러졌다. 흐물흐물한 옷을 걸쳤던 그녀의 치마가 들춰지자 여성의 중요한 부분이 드러나 유부녀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때부터 코치나 트레이너도 나체로 입장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옷을 벗고 출전하거나 관람하는 전통에 따라 그 당시 왜소한 남자들의 고민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의 올림픽에 참가한 남성 선수들이나 관중들은 자신의 음경 크기에 더욱 민감해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벗은 것은 선수들이었지만 그 이후 코치를 비롯하여 경기 관람을 하는 관람객까지 나체이어야만 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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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023년 5월 6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정식으로 알리게 됐습니다. 대관식은 이날 오전 11시(한국시간 오후 7시)에 진행되며 찰스 3세는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영국과 14개 영 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찰스 3세는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직후에 왕위를 승계했으며, 8개월간 준비를 거쳐 무게 2㎏이 넘는 왕관을 쓰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 이후 70년 만에 치러지는 찰스3세의 대관식은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큰 초대형 행사입니다. 화려한 예식과 오랜 전통에 기반한 종교의식으로 국왕의 위용을 드러내고,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서 왕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커밀라 왕비도 이날 대관식을 기점으로 '왕의 배우자'(Queen Consort)에서 드디어 '왕비'(Queen) 칭호로 불리게 됩니다.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 부부는 이날 오전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위 6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제작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합니다. 왕실 근위대 및 기마병들이 호위하는 행렬은 ‘더 몰’ 대로를 거쳐 약 2.3km 행진합니다.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때보다 행진 거리가 절반 이하로 줄었답니다. 고물가와 에너지 위기 등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라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은 1066년 윌리엄 1세부터 시작했으며, 찰스 3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40번째 국왕이 됩니다. 대관식 참석자는 세계 203개국 주요인사 2,200여명으로 여왕 때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습니다. 국가원수급 약 100명을 포함해서 세계 203개국의 대표가 초청됐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하고 그 밖에 프랑스 대통령, 영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54개국이 속한 영연방(The Commonwealth of Nations) 국가 수장 등이 직접 자리를 지킵니다. 우리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한덕수 총리는 4일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대관식에서 찰스 3세는 성경에 손을 얹고 즉위 서약을 한 뒤 715년 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 대주교가 씌워 주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머리에 쓰게 됩니다. 1661년 제작된 왕관은 순금 틀에 루비, 자수정, 사파이어 같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돼 있습니다. 무게는 2.23kg. 찰스 3세 손자 조지 왕자 및 커밀라 왕비가 이전 결혼에서 얻은 손자 손녀들이 명예 시동으로 나서게 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왕 취임식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는 국가적 명예와 전통이 스며든 행사로 관습법을 중시하는 영국으로서는 세금낭비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이러한 전통과 명예의 대관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국가적 대행사를 돈과 결부시키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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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장진호(長津湖)' 전투 포스터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4월 27일 미 상하원합동연설에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 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치른 희생은 매우 컸습니다.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전사했고, 6·25 전쟁에서 미군 약 3만7,000명이 전사했습니다”라며 장진호 전투를 연설 도중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중국 관영 중앙TV(CCTV)가 중국의 6·25 참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긴급 편성했습니다. 4월 29일 오후 CCTV 군사채널(CCTV-7)의 편성표에는 30일 밤 9시 54분(현지시간)부터 ‘압록강을 건너다’라는 제목의 40부작 드라마 1,2부(재방송)가 편성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군 등 유엔군이 중국군과 싸운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를 거론한 뒤 나온 긴급 편성이라 중국의 저의가 주목됩니다.

CCTV가 제작해 2020년 12월부터 방영한 '압록강을 건너다'는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과 압록강 도하, 장진호 전투를 포함한 각 개별 전투를 그린 이른바 ‘애국주의’ 대작 드라마죠. 본방송 이후로도 CCTV에서 여러차례 재방송됐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장진호 전투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전쟁입니다. 장진호라는 제목으로 2021년 상영한 중국의 영화는 역대 중국 박스 오피스 1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중국에서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수 천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걸고 싸워 ‘항미원조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원조하는 전쟁’이라는 의미로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환구망은 “이 드라마는 방대한 사료를 기초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의 역사적 장면들을 전면적으로 보여주며 장진호 전투 등 여러 감동적 전투의 장면을 실감나게 되살려내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진지하게 드러내 보인다”며 "드라마가 전편에 걸쳐 웅변하는 사실은 '무기는 많고 기개는 작은 침략자는 반드시 패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환구망의 보도처럼 중국은 미국과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 6.25전쟁 때 미군을 비롯한 UN군과 전쟁을 했던 역사를 되새김질함으로써 중국 국민들에게 반미, 반한 정서를 고취시키고 미국에 대해 대만 사태 개입 및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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