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로스(Satyros)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숲의 신으로서 여자와 술을 좋아하는 방탕한 신을 말한다. 사티로스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수행하는데, 술과 여자를 특히 좋아하고 음악을 즐긴다. 사티로스가 너무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Satyric(好色)이라는 형용사의 어원이 되었다.
사티로스(사티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쾌락적인 육체적 욕정을 충족시키려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사랑에서 완전한 남녀의 동의에 의한 욕망의 충족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쾌락을 위한 욕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티르 곁에는 술과 여자가 따라다닌다.
한편, 님프(Nymph)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자연의 정령 즉, 요정이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며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대부분이다. 젊고 아름다운 인간 청년이나 소년을 보면 한눈에 반해 다짜고짜 자주 납치해 욕정을 채운다. 이 때문에 여성의 과잉 성욕을 의미하는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님프의 연애담은 신화나 전승에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슬픈 결말로 끝나는 것이 많다.
사티르와 님프의 특성을 심리적으로 반영하여 탄생된 용어가 색정증(Erotomania, 성욕과다증)이다. 색정증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정신병으로 DSM-5에서는 망상장애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보통 수동적인 성향을 가졌거나, 성 경험이 없는 사람 등 망상이 꽃피기 좋은 조건에 있는 사람이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망상장애가 으레 그렇듯 만성이 되기 쉽다. 여성이 걸리기 쉽다는 편견이 있지만 양상이 조금 다를 뿐 남성이라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색정증은 성욕의 이상 항진이나 음란증을 가리키는 때가 잦고 남성의 성적 욕망은 사티리어시스(Satyriasis), 여성은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고 한다. 사티리어시스는 술과 여자를 유달리 좋아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사티르(Satyr)에서 유래하고, 님포마니아는 님프(Nymp)와 마니아의 합성어이다. 색정증이 '에로토마니아'인데 여기서는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에로스(Eros)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神)과 요정(妖精) 등이 후에 로마를 거쳐 서구사회에서 단어의 기원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아도 너무 많다. 위의 그림은 브그로(부게로)의 걸작 중 호색한을 상징하는 사티르와 여성의 욕정을 나타내는 님프가 그려져 있어 뭔가 야릇한 느낌이 들지만, 어찌됐든 아름다운 인체의 신비를 은은하게 빛나는 색채로 처리한 브그로의 기법이 돋보이는 명화 중의 명화다.
이른 봄 잔설(殘雪)을 뚫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얼음 위에 핀 꽃이라는 의미의 정빙화(頂氷花)라고도 불리는 '중의무릇'이다. 원래 시골에서 자랐던 나로서도 그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이었다. 그러기에 꽃을 보는 감동이 남달리 컸다. 이 꽃은 산기슭 나무 밑에 다소곳이 피어나 이따금 불어오는 미풍에 몸통을 숙여 연신 절을 하고 있다.
백합과의 중의무릇은 스님들이 살고 있는 산사(山寺) 주변 산기슭의 초지에 잘 자라고 있다. 그래서 ‘중’이라는 말이 들어갔다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무릇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눈을 뚫고 자라는 식물이라면 아무래도 습기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는 얘기인데…. 무릇을 분석해보면 ‘물웃’으로도 부를 수 있다. 물은 물(水)이고 웃은 위(上)를 의미한다.
그러니 물이 있는 산기슭이나 가장자리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생각된다. 물웃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릇으로 변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중의무릇이라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가! 또 다른 이유로는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안료물감 재료로 이용해서 중의무릇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 외에도 스님들이 거주하는 산사 주변에 피어난 꽃의 키가 아무리 커봐야 스님의 무릎 밖에 닿지 않는다고 해서 중의무릇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2. 중의무릇의 영어이름은 '베들레헴의 노란별'이다.
영어 명칭은 베들레헴의 노란별(Yellow Star of Bethlehem)이다. 중의무릇에 어떻게 ‘베들레헴의 노란별’이란 영어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순전히 주관적 관점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따라 이곳에 도착하여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
중의무릇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처럼 생겼다 해서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왜 노란별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바친 예물 중에 황금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황금은 쇠붙이 중의 쇠붙이이며 귀금속 중의 귀금속이니, 노란색의 황금이 왕 중의 왕이 태어났음을 의미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예수 탄생을 의미하는 별이 노란색이라는 말에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어찌됐든 중의무릇은 마치 별처럼 생겼다, 색만 노란색일 뿐. 이 노란색 별꽃은 오로지 예수만을 숭배하기에 꽃말조차도 ‘일편단심’이 아닌가 싶다.
3. 그리스 신화와 예수 탄생과의 관계
그리스 신화에는 양의 다리에 뿔을 가진 목양신 판(Pan)이 등장한다. 판은 양떼와 목동들의 신으로 목동들이 부는 피리(Pan-pipe)를 발명하는 등 음악을 좋아했다. 또한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요정들에게 춤을 가르치며 조그만 동굴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여색을 너무 밝히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니 밤이건 낮이건 갑자기 튀어나와 여자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곤 했다. 여기에서 갑작스런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Panic)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이 처럼 공포스런 존재로 여겨진 후 시간이 흐르면서 판은 이교(異敎)를 대표하는 신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판(Pan)이라는 의미는 범(汎)이라는 뜻으로 전체 또는 모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교도의 범신(汎神)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베들레헴 상공에 중의무릇과 같은 노란별이 찬란히 베들레헴의 마구간(馬廐間)을 비추는 가운데 예수가 탄생했다. 이때 천사들이 모든 목동들에게 왕 중의 왕 그리스도가 탄생했음을 알렸다.
이때 목동들의 수호신이던 판(Pan, 사티르Satyr로 대표되기도 함)이 그리스 천지가 흔들리는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 버렸고, 올림포스 신들은 신격(神格)을 잃고 차가운 암흑세계로 쫓겨났다고 한다. 이교신(異敎神)의 대표 격이던 판이 죽었다는 것은 그리스 신화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이교신 판이 만든 '팬 파이프'
목양(牧羊)신 판이 목동들의 피리인 팬파이프(Pan-pipe)를 발명한 내용을 짚어보고 넘어가자. 시링크스(Syrinx)는 처녀의 수호신으로 사냥의 여신이던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요정이었다. 그녀는 아르테미스에게 평생 처녀로 남을 것을 서약하고 어느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시링크스는 너무도 아름다워 아르테미스 여신과 사냥을 할 때면 누구도 두 여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숲의 요정들은 활을 보고 두 여인을 구분하였다. 시링크스의 활은 동물의 뼈로 만든 반면, 아르테미스 여신의 활은 은(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판(Pan)은 들판을 달리다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시링크스(Syrinx)를 보았다. 워낙 여자를 좋아했던 판인지라 아름다운 여인 시링크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판은 요정들과 춤을 추며 속삭이던 현란한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을 아르테미스의 요정으로 살기로 맹세한 이상 남자를 사귈 수 없었다. 그녀는 판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날렵한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판도 그녀를 뒤쫓아 달렸다. 시링크스는 아무리 도망쳐도 뒤쫓아 오는 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강둑에 도착했을 즈음 그녀는 숨이 차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판에게 잡히면 여지없이 겁탈을 당할 처지이고, 그래서 처녀성을 잃게 되면 처녀의 수호신 아르테미스를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강의 요정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강둑에 도착한 판이 그녀를 껴안으려 하자 그녀의 몸이 점차 갈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의 요정들이 그녀를 갈대로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판은 아름다운 시링크스가 갈대로 변하자 아쉬움과 비참함에 탄식하였다. 그러자 판의 탄식소리가 갈대의 줄기 속을 공명(共鳴)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갈대는 억새와 달리 줄기가 가느다란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다. 그래서 외부소리를 공명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판은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판은 시링크스가 변한 갈대 피리를 그녀의 이름을 붙여 시링크스라 불렀다. 시링크스(Syrinx)는 목동들이 부는 피리의 이름으로 판의 피리라는 뜻의 팬파이프(Pan-pipe)라고도 부른다. 이 악기는 판의 플릇이라는 의미의 팬플릇(Pan-flute)으로도 발전했다.
5. 그리스 로마 신들의 몰락과 예수의 등장
어쨌든 왕 중의 왕, 즉 신 중의 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Polis)들을 중심으로 줄곧 종교적 우위를 점해 왔던 신화 속의 신들이 한낱 이야깃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계기가 된다. 신화를 그토록 신봉했던 그리스 인들이 누구보다도 기독교를 잘 수용하여 현재 국민의 98%가 그리스 정교회를 믿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해하기 힘든 자연현상을 신들의 행위로 믿어왔던 신앙적 토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원전(B.C.) 700년경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에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처럼 신화로 세상의 섭리를 설명하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당시 제우스(Zeus)는 그리스의 어떤 신보다도 더 추앙을 받아 거의 유일신의 경지에 도달했었다. 또한 하데스(Hades)도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었다.
그러나 서기(A.D.) 1세기에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전파되면서 제우스는 유일신의 지위를 잃게 되었고, 하데스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권리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리스 신화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신화는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는 우리의 교양을 풍부하게 해 주고, 또한 문학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화를 사랑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베들레헴의 노란별, 즉 중의무릇 비늘줄기를 심장질환의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가냘픈 꽃도 자신만의 약효로 우리 인간에게 기여한다고 하니 들꽃이 갖는 의미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