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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소시오패스(sociopath)의 차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두 용어는 모두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는 정신과 진단명 아래에 속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적으로 출생 시부터 비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은 때때로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주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가정폭력과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 생활을 시작하면서 반사회적 행동을 보입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속이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타인의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시오패스는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더 발달해 있어, 타인을 치밀하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겉보기에는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나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 그러한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잘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따돌림을 주도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주변을 조종하는 사람은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한국에서 유명한 연쇄 살인범 정두영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크고, 강호순은 소시오패스에 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블랙 아웃’의 최후의 빌런 최나겸은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두영은 잔혹한 살인 방법, 희생자에 대한 냉담한 태도, 범죄에 대한 쾌감 추구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보였습니다. 특히 맨손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등 잔혹성이 극심했으며, 범죄 후에도 별다른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호순은 계획적인 범죄, 거짓말과 속임수를 잘 사용하는 모습,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부족 등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보였습니다. 특히 여성들을 미끼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등 교활하고 치밀한 범죄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블랙 아웃’ 드라마 속 최나겸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는 등 소시오패스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특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를 사용하고, 타인을 조종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특징입니다.

이 두 성격 유형의 공통점은 일반적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양심(conscience)과 도덕(moral)의 결여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리자면, 이는 초자아 결함(superego lacunae)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4%정도가 이에 해당합니다. 

만약 주변에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지나치게 놀라지 말고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며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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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패시(pathy)의 합성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장애는 주로 사회 규범을 무시하고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소시오패스를 만 18세 이상의 성인 중에서 사회적 규범을 지속적으로 위반하며, 충동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약 4%가 소시오패스라는 통계도 존재합니다. 이 장애는 타고난 뇌의 문제보다는 성장 환경, 특히 어린 시절의 학대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년기의 부정적인 경험이 감정의 결여로 이어져,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성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시오패스의 특징

소시오패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두려움, 슬픔, 기쁨과 같은 일반적인 감정을 깊이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쉽게 속이거나 이용합니다. 특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잘못을 떠넘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소시오패스는 강한 자기애를 지니고 있어 자신에 대한 연민은 크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사회 및 타인의 탓으로 돌립니다.


소시오패스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이 강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계획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무시하거나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종종 증거를 남기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범죄를 계획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시오패스의 행동 양상과 눈빛

소시오패스는 감정적인 결핍으로 인해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반응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일반인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눈을 깜빡이거나 피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상대방을 응시하며 죄책감이 없는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명확하게 연구된 바가 없으며, 전문가들도 소시오패스를 외형적인 특징만으로 판별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임상 사회 복지사 빌 에디는 소시오패스가 "잘 숨겨진 성격 장애"라고 언급하며, 이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누구나 소시오패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적인지를 강조했습니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개인적 고백

2024년 11월, 호주의 모델 카니카 바트라 매더슨은 자신의 틱톡 채널을 통해 “나는 소시오패스다”라는 고백과 함께 소시오패스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그녀는 소시오패스의 눈이 "죽은 것처럼 감정이 없고 공허하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본성을 숨기기 위해 눈을 자주 깜빡이는 훈련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소시오패스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론

소시오패스는 성장 환경과 관련된 복합적인 심리적 문제로,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일반인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교한 속임수와 계획적인 행동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시오패스를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특성과 행동 양식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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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는 본래의 인격이 파편화되어 서로 다른 인격들이 교대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입니다. 과거에는 다중인격 장애로 불렸으나, 1994년 미국정신의학협회는 이 명칭을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온전한 하나의 인격이 분리된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복수의 완전한 인격이 존재한다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심리적 메커니즘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은 불필요한 기억을 억압함으로써 과거의 불행과 죄책감으로부터 현재를 보호합니다. 그러나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경우, 무의식에 갇힌 또 다른 인격이 의식으로 튀어나와 기존의 인격을 억압하고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자신의 행동과 기억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이 현상은 심리적 충격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역사 속 사례와 특징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사례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1791년 독일의 한 여성은 자신을 프랑스 귀족이라고 주장하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인격이 나타나면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서로 부정하곤 했습니다.

또한 1898년에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성은 '세 명의 이브'로 알려지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인격이 전환될 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주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현대적 사례심리학에서 다룬 유명한 사례들은 코타르 증후군(자신이 죽었다고 믿음), 외계인 손 증후군(자신의 손을 통제할 수 없음), 그리고 이름, 나이, 성별이 각기 다른 여러 인격이 나타나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등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뇌의 오작동과 심리적 영향이 인간의 정체성과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와 범죄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범죄와도 연관될 때가 있습니다. 숨겨진 인격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환자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여 범죄를 은폐하려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2022년 10월, 한 남성이 가족을 칼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내 안에 3개의 인격이 있으며 8년 동안 기억을 잃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 그의 행동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으며,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가장해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중인격 장애의 논란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많이 알려진 곳에서 유독 사례가 집중적으로 보고되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많이 진단됩니다. 이는 특정 의사나 환경에 의해 과잉 진단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심리적 불안감이나 조현병 등의 다른 장애가 잘못 진단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진단과 연구에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마무리: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인간의 심리적 복잡성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빙의" 혹은 "귀신 들림"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심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장애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깊은 이해와 적절한 치료를 통해 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단순한 특이 사례로만 보지 않고,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회복력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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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 사이에서 수면 장애는 점점 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성인 10명 중 4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인 코골이는 단순히 수면 중 발생하는 소음으로만 치부하기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코골이는 왜 발생할까요?

코골이는 수면 중 호흡 기류가 좁아진 기도를 통과하면서 목젖이나 연구개 같은 주변 구조물이 진동하며 소리를 내는 증상입니다. 주된 원인은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이지만, 이외에도 과체중, 과도한 음주, 턱 구조의 문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코골이가 위험한 이유

코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로 인해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함께 잠을 자는 사람의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골이를 앓는 환자의 약 3분의 1이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을 자는 도중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상태가 시간당 5회 이상 반복되는 질환입니다. 이는 뇌에 산소 공급을 방해해 고혈압, 뇌졸중, 부정맥, 치매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돌연사로 이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정밀한 진단이 필수입니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의심된다면 수면클리닉에 방문해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널리 시행되는 검사 방법은 수면다원검사로, 뇌파, 심전도, 수면 중 호흡 곤란의 횟수 등을 체크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치료 방법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된 경우, 비수술적인 치료법인 양압기 치료가 대표적인 선택지입니다. 양압기는 공기 압력을 이용해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며, 현재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치료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생활 속 관리도 중요합니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은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와 더불어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들이고, 과식이나 음주를 피하는 것 또한 증상 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위한 작은 관심이 수면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일상을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의심된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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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의 집, 그 끝섬으로의 순례

만조 때는 감히 발길조차 닿을 수 없는 곳, 물이 차오르면 섬은 고립되어 버린다. 그러나 물이 빠진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끝섬에 다다를 수 있다. 가롯 유다의 이름을 딴 이 작은 섬은, 그의 비극적이고도 어두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끝섬에 발을 들이면,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고딕 양식의 아담한 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첨탑과 기와가 어우러진 지붕은 마치 묵직한 침묵 속에서 속죄와 반성을 속삭이는 듯하다.

그 앞에는 나선형으로 꼬아 올린 벽돌 종루가 서 있다. 이 종루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기념하며, 또한 순례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H.J Mun님이 순례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을 12번 친다.

열두 번의 종소리를 울릴 때마다, 순례의 발걸음이 12km의 길을 걸어온 여정을 마무리했음을 깨닫는다. 종소리는 순례의 끝을 알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고요한 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가롯 유다의 비극적인 선택과,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뒤틀리고 꼬인 삶을 마주보게 한다.

‘가롯 유다의 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각자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후회와 속죄를 떠올리게 하며,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로 순례자를 이끈다.

H.J MUN 님이 성당안에서 마지막 기념의 말을 적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예수께 입맞춤하던 유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돈주머니를 쥔 그의 손, 그리고 스승을 배신했던 그 찰나의 선택. 그는 비록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이야기는 오늘도 끝섬에서 새겨지고 있었다.

11번째 순례지와 12번째 순례지의 중간 바다에 서서

붉은 종루 아래에서 마지막 종을 치며, 나는 그곳에 온전히 서 있었다. 가롯 유다의 고독이 깃든 곳에서, 내게도 깊은 고독과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순례길에서 배운 성찰과 회복의 의미를 품고 살리라고.

가롯 유다의 집은 끝섬에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 한구석 끝자락에도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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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바람의 길, 시몬의 여정

시몬의 집은 문이 없다. 뻥 뚫린 구조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음껏 드나든다. 그 바람은, 마치 시몬 자신처럼 속박 없이 자유롭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열한 번째 작은 교회에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벤치에 앉아 넓게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며, 그가 걸었던 길을 상상해 본다.

그는 “가나나인 시몬” 혹은 “셀롯”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에는 그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갈릴리에서 태어나 로마의 압제 속에 자랐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그의 마음은 가난하고 억눌린 동포들을 위한 저항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가 속했던 셀롯당은 로마에 대항하며 유대인의 자유를 외쳤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투쟁이었다. 칼과 피로 이루어진 해방이 전부인 시대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저항의 연속이 아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또 다른 열정을 깨달았다. 그 열정은 단지 칼로 이루는 정의가 아닌, 사랑으로 이루는 해방이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한 순간, 시몬의 발걸음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가롯 유다와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했으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제자들과 함께 복음의 메시지를 품었다. 그의 과거는 이제 주님 안에서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시몬은 자신의 열정과 신앙이 시험받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로마에 대한 분노와 복음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는 마침내 사랑과 평화가 진정한 해방의 길임을 깨달았다.

시몬은 주님이 떠난 후, 복음을 들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그의 여정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끊임없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나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그 길 위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 열정은 이제 칼이 아닌 복음의 불꽃이었다.

그의 집은 그래서 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이 없어야만 자유롭게 바람이 드나들고, 사람들도 두드림 없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의 삶 자체가 그렇게 열려 있었다. 그는 누구든 받아들이고, 누구와도 함께하며, 복음을 나누었다.

나는 바닷바람 속에서 시몬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의 열정과 믿음이 이 작은 예배당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시몬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의 길 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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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타대오(Jude Thaddaeus)는 가롯 유다가 아니다.

루가 복음 6장 16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의 12사도 명단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다(Judas)이고,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타대오라 부르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옷(가롯) 사람 유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둣길을 따라 소악도에서 진섬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한 유다 다대오의 집이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다. 뾰족한 지붕과 하얀 벽은 햇빛을 받아 빛나며,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마치 영원의 경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순례자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이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2000년을 거슬러 이어진 믿음의 이야기를 오롯이 품고 있다.

유다 다대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흔히 '유다'라는 이름 때문에 '가롯 유다(유다 이스카리옷)'로 오해를 받곤 하지만, 그의 삶은 온전히 신실함과 헌신으로 채워져 있다. '다대오'라는 별칭은 그의 부드럽고 열정적인 성품을 의미한다고 전해진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던 제자였다.

특히 그의 이름은 소외된 자와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빛난다. 초대 교회에서 다대오는 안티오키아,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등지로 복음을 들고 나아갔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따뜻한 환대와 치유의 흔적이 남았다. 그는 끝내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했지만, 그의 흔적은 전해지는 기도와 전승 속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있다.

진섬 삼거리에서 그를 기리는 공간을 마주하면, 유다 다대오가 남긴 희생과 헌신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순례자의 마음은 어느새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묻는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 속에서, 다대오의 생애는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을 가르친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늘과 바다의 경계처럼 뚜렷한 신앙의 길이 떠오른다. 유다 다대오, 그의 이야기는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진다. 삶의 여정 속에서 때로 흔들릴지라도, 그의 믿음과 사랑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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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소원의 작은 야고보 사도를 만나다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12사도의 이름을 딴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 9번째에 위치한 '소원의 집'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小 야고보'를 기리는 공간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0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알패오의 아들인 '작은(小)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인  '大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그의 구체적인 행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작은 야고보의 집

섬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소원의 집, 즉 작은 야고보의 집은 마치 작은 야고보 사도의 삶을 닮아 있습니다. 눈에 띄는 사건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살았던 그의 삶처럼, 소원의 집 또한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묻혀 있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세배대의 아들인 大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길이지만 이곳은 小야고보의 집이 9번째 코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산티아고와 섬티아고는 크고 작은 야고보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 아닌 공통점이 있는가 봅니다. 

소원의 집은 기쁨의 집을 지나 소악도를 향해 조금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소원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 작은 산을 꺼이꺼이 넘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냥 포장길로 걸어가면 가깝지만 산을 돌아 가는 코스가 낭만적이라 그 길을 택했죠.

작은 야고보의 집 안으로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나무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물고기 형상을 한 창문과 소악도의 돌은 마치 섬에 사는 어부들의 마음을 담은 듯 따뜻한 감성을 자극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나의 소원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공간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솔한 기도가 하늘에 닿는 듯했습니다.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소원의 집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소망과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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