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총 5회에 걸쳐 걸었었습니다. 4번은 프랑스길을, 1번은 포르투갈 해안길을 걸어갔었죠. 그때만 해도 유로화 환율도 그리 높지 않아 적당한 편이었고, 순례자 숙소비용도 저렴했으며, 숙소에서 직접 식사를 조리해 먹었죠. 그래서 40여일 동안의 항공료를 포함한 전체 비용이 300만원 안팎이면 충분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19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자 용기있는 KSG 순례자가 산티아고 가는 길 800여 km에 도전을 했습니다. 물론 항공료도 다시 값이 다운되지 않아 예전에 비해 많이 비쌌다고 합니다. 물론 유로화 환율도 1,400원대로 높아 비용이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오른 것은 항공료나 환율 뿐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순례자 숙소(알베르게)에 묵는 비용이 시립(Municipal)의 경우 하룻밤에 5유로에서 8유로로 상승했고, 사설(Privado)의 경우에는 하룻밤 숙박비용이 15~20유로였다고 합니다. 직접 알베르게에서 요리하지 않고 카페테리아에서 사먹는 순례자 메뉴도 과거 끼당 10유로가 일반적인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15~20유로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알베르게에서 직접 조리를 해서 먹곤 합니다. 에스파냐는 농산물가격이 저렴해서 재료를 구입하여 직접 조리하면 1~3유로면 한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베르게마다 조리기구가 완비돼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주방 편의시설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알베르게의 주방을 개방한 곳이 많지 않을 뿐더러 주방을 개방한 곳을 찾기도 어렵고, 많은 시립 알베르게도 이제는 주방을 제공하지 않고 인덕션이나 가스불이 있던 곳에 널빤지로 덮어놓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고 합니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은 알베르게에서 조리한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 것이 미덕이자, 낭만이자, 비용절감 방안 이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과거에는 카미노(camino=road)에서 만나 같이 걷다보면 친구가 되어 알베르게에 같이 투숙하면서 저녁식사를 함께 해 먹었기 때문에 1인당 갹출비용이 1~3유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베르게를 앞서 5일 이전에 미리 예약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 길동무가 되었어도 알베르게에 함께 투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불어 식사를 조리할 수 없어 결국은 혼자 음식을 사먹어야 된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식사와 숙박비용이 대략 150~200만원 정도면 됐었는데 지금은 약 350만원이 소요됩니다.
지금처럼 상술화되기 이전에는 그냥 걷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면 그 마을의 알베르게에 투숙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예약은 생각도 안 했었는데 불과 수 년만에 이렇게 변해 버렸답니다.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과 AI시스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데...
항공료는 약 150만원이 소요됩니다. 2023년초 기준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의 직항 항공료를 보면 에어프랑스 155만원, 아시아나항공 185만원, 대한항공 211만원입니다. 물론 여러 곳을 경유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항공료를 더 아낄 수는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KAL 직항만을 고집했었습니다. 트랜지션을 하다보면 배낭을 분실할 염려도 있고 번거로워서 우리 국적기를 고수했었죠. 항공료는 대략 150만원으로 설정하면 무방할 것 같습니다.
과거 40여일 체류비용을 300만원으로 설정했다면, 지금은 최소한 500만원(항공료 150만원, 체류비용 350만원) 이상으로 설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UNESCO문화유산이라는 네임에 걸맞게 다양한 사람이 찾아 올 수 있도록 비용이 저렴했었는데, 이제는 사설 알베르게가 난립하는 등 장삿속으로 변질되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봄, 여름, 가을을 섭렵하며 산티아고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걸어보지 않은 겨울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전해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금년 겨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려던 나의 소망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500만원의 비용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장삿속으로 변해버린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좀 그래서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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