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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및 나르시시스트의 특성

나르시시즘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많이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적 성격 특성을 지닌 사람들로, 그들의 행동은 종종 처음에는 쉽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면에 숨겨진 특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때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건강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머릿속에 '나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확고한 자아상을 심어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 내며,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나르시시스트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나'

나르시시즘 성격 장애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성취를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경향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나르시시스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자신을 그룹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묘사하거나, 직장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직원으로 내세우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장은 그들이 내면의 불안과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하며, 자신을 이상화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데도 조언 남발

나르시시스트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조언을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그룹 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느끼는 '우월감 콤플렉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무시하고, 자신이 더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자신은 언제나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항상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연락에 즉시 응답하지 않거나, 식당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며, 특히 자주 만나는 친구나 가족에게서도 이러한 특별 대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나르시시스트가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야망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자신이 특별한 운명을 지닌 위대한 존재라고 믿는 것은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위층 인물들과 어울리기를 선호합니다. 

이들은 동료들로부터 존경받고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는 욕구가 남들보다 훨씬 강해, 지위에 대한 집착이 두드러집니다. 또한, 자신이 속하지 않은 그룹의 사람들을 경시하는 경향도 흔히 나타납니다. 이러한 태도는 대인 관계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나르시시스트가 주변 사람들과의 건강한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행동

나르시시스트는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지나치게 도도하거나 벽이 높아 보이는 태도를 지양합니다. 오히려 친근한 미소와 경계를 허무는 대화에 능숙하며, 관계의 초반에는 상대방을 사로잡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과한 호의와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를 '러브 바밍(love bombing)'이라고 부르며, 마치 폭탄처럼 쏟아지는 애정 공세로 상대방을 감동시키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세상에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또는 "이 사람은 나를 정말 좋아하나 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르시시스트가 연인이라면 상대방은 마치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되며, 친구나 직장 동료로서의 나르시시스트는 평생 만나기 힘든 '귀인'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마움이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발전할 무렵, 나르시시스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연락을 줄이고, 호의도 감소시키며, 간헐적인 호의를 동정하듯 제공해 이미 자신을 신뢰하고 좋아하는 상대를 조종하기 시작합니다. 때때로 상대방을 주변 사람들과 고립시키기도 하며, 평가절하와 가스라이팅을 통해 상대의 자존감을 무너뜨립니다.

"너는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다."라는 말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며, 모든 문제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항상 고결한 피해자로 남고, 잘못한 것은 항상 외부 세계에 있다고 믿습니다. 

타인은 도구일 뿐

나르시시스트는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도구나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쉽게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경쟁자를 모함해 끌어내리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필요한 사람에게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선물과 호의를 베풀지만, 만만한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한 접근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나르시시즘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구분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흑백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심지어 소시오패스적인 특성을 지니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물들로 인해 다양한 범죄와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정서적 학대가 발생합니다. 만약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만 커진다면, 이는 그 관계를 단절해야 할 신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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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나르시시스트일까, 아닐까?’ 분석하고 시험할 필요는 없지만, 만약 내게 큰 고통을 주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악인’으로서 병적인 나르시시스트가 일반 사람이나 근사하고 매력적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당신 주변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행동 패턴과 태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주는 감정적 영향, 대인 관계에서의 이기적인 행동,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중성이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의 행동이 지속적으로 당신의 자존감이나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관계를 재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단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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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8번째 코스인 기쁨의 집, 마태오의 집에서의 성찰

섬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8번째 순례지, 소기점도에서 소악도로 이어지는 노둣길의 갯벌에 위치한 마태오의 집.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입구에서부터 황금빛 양탄자로 계단을 수놓은 듯 마치 황금 궁전에 들어서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황금빛은 과연 마태오의 집 애칭인 기쁨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기쁨의 집 안으로 들어가 사방의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그곳에서 펼쳐진 풍경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살며시 던져 주었다. 만조 때 바다의 물결이 살랑거리고,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전에 스치면 '기쁨의 의미가 바로 이곳에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가슴에 가득 찬다.

작은 성당에 들어서 밀물에 고립되고, 썰물에 다시 길을 걸어가는 반복의 일상.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 노여움와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리라. 어쩌면 인생이란 이 모든 감정을 겪으며 진정한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기쁨의 집에서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노둣길 옆으로 찰랑찰랑 차오르는 바다의 향기,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어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양한 감정들이 어우러져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또한 완전 밀물이 될 때 마태오의 집에서 고립된 채 명상과 묵상을 하는 우리들은 천국의 기쁨을 느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L0hW7We3Y3k

우리 일행은 어느 어부의 배를  타고 만조 때에 마태오의 집에 다가갔다. 보트의 스피드, 물결의 갈라짐,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찰랑거리는 물결이 마태오의 집 곁을 때릴 때 완전히 환희에 젖어 소리를 질러댄다.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을 찾아간다. 기쁨의 집, 마태오의 집에서의 경험은 그 여정에서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기쁨이란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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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벽과 모로코 블루의 조화, 인연의 집이라 불리는 토마스의 집을 찾아서

한적한 섬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집이 하나 있습니다. 하얀 벽과 모로코 블루가 어우러진 이곳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집 외벽 한쪽에는 독특한 조각처럼 그려진 물고기와 둥근 떡이 눈길을 끕니다. 이 그림은 성경 속 오병이어 (五餠二魚) 의 기적을 상징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은혜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경건한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내부 중앙에는 제대가 자리하고, 그 뒤로는 두 개의 촛대가 나란히 진열돼 있습니다. 촛대 위로는 십자가 모양의 창문이 조용히 빛을 받아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묵상하는 시간은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줍니다.

이곳에서 도마(Thomas) 사도에 대한 묵상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도마는 그 현장에 없었기에 사도들의 증언을 의심했습니다. "그분의 못 자국을 보고,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그의 말은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못 자국과 옆구리를 직접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제야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며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지요. 그 뒤부터 '의심많은 도마'라는 별칭이 붙게 되죠.

예수님께서는 그런 도마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집은 "인연의 집"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신혼부부가 사진 촬영 장소로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얀색과 모로코 블루의 조화로운 색감은 누군가에게는 성경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모로코의 낭만적인 카사블랑카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마치 사랑과 믿음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당신도 잠시 시간을 멈추고 깊은 묵상과 싱그러운 추억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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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과 눈썹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MacEwan 대학의 연구진은 39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나르시시즘 성격검사(NPI, 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를 시행하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부위별로 나누어 일반인들에게 보여준 후, 그들이 각 얼굴을 평가하며 나르시시즘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눈썹의 밀도와 빽빽함이 높은 사람일수록 나르시시즘 점수가 더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이 실험은 척도에 의존해 진행되었고, 행동 관찰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인간의 외모와 성격의 관계에 대해 단순히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할 뿐, 나르시시즘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르시시즘의 특성과 사례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하는 성격적 특성을 말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직업적 환경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 가식적 매력 :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호감을 얻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태도가 표면적인 것임이 드러납니다. 

2. 업적과장 : 언제나 자신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타인을 고려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기도 합니다. 즉 동료와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마치 혼자서만 한 것처럼 떠벌리는 것이 실례가 되겠습니다. 

3. 타인 경시 : 직장 등에서 동료의 아이디어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는 등 상대를 초라하고 무기력한 기분이 들게 만들며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지게 합니다. 

4. 관계 단절 : 다른 사람을 '존재'가 아닌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가치가 없어지면 쉽게 돌변하여 관계를 끊는 이기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5. 감정 조작 : 상대방을 가스라이팅하여 감정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주요 특징 5가지

1. 과도한 자아중심성 :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주변 상황이나 타인의 감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2. 공감 부족 :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감정적으로 차가운 모습을 보입니다. 

3. 칭찬에 대한 갈망 : 끊임없이 칭찬과 인정 받기를 원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불쾌감을 표출합니다. 

4. 경쟁 심화 : 자신을 타인보다 우월하게 보이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며, 이를 위해 타인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자행합니다. 

5. 표면적인 관계 : 타인을 진정한 인간관계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나르시시즘 대처법

만약 직장, 학교, 또는 사회적 모임에서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면, 과도한 감정 소모를 피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대화를 삼가고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지키며 관계를 단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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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내부의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유리성(城). 그곳이 바로 바르톨로메오의 집입니다. 예수님처럼 갈릴리 호수를 걸어갈 수 없기에 예수님의 기적을 묵상하면서 호숫가에서 나의 모습을 담아 기념촬영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나의 옆 뒤쪽의 유리성이 바르톨로메오의 집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으로, 요한복음에서는 나다나엘(Nathanael)로 불립니다. 성경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적지만, 요한복음 1장 45-51절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며 그의 존재가 처음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며 칭찬하셨고, 이 만남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순교할 때 피부가 벗겨지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선교 덕분인지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화 합니다. 

로마가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서기 380년에 이르러서야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선포하게 되면서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에 비해 79년이나 앞서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이 바르톨로메오, 즉 나다나엘의 선교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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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5번째로 찾아간 곳은 빌립의 집이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빌립을  '필립보'라고 부릅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노두길이 시작되는 곳, 그곳 한 켠에 자리잡은 빌립의 집은 커다란 십자가 창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어찌보면 가장 교회다운 곳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니 제대가 놓여있다.

지붕은 마치 물고기 비늘과 같이 반원형을 잘라진 나무로 덮어 놓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물고기 형상이 십자가처럼 하늘을 뚫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형태의 교회입니다. 문 위의 창문은 돌절구를 잘라 붙인 것으로 낭만적인 섬 문화를 되새겨 보게 만듭니다. 

조그마한 교회 왼편으로 노둣길이 보입니다.

빌립의 집 낮은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노둣길은 모세가 홍해를 갈랐던 사건을 기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간조 때라 이미 물이 갈라져 있습니다. 이제 홍해를 건너가듯 신안 앞바다를 가르며 도보로 걸어야 겠죠?

십자가 유리창문

빌립은 예수님과 함께 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종종 다른 제자들과 함께 등장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일으키기 전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이 사람들을 먹일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빌립(필립보)은 “200데나리온 어치로도 모자를 것 같습니다.” 라고 답했고, 안드레아도 "여기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앙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곧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려고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봤던 거죠. 그때까지도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아닌 지상의 쌀밥도 먹지 못한 채 점심시간을 넘겨서도 다음 여정을 향해 걸어갑니다. 아침과 점심도 쫄쫄 굶은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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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순례길 위, 요한의 집에서 바라본 영원한 사랑 이야기

"창문을 통해 작은 무덤에 닿은 시선,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노래"

산 자와 죽은 자를 향해 열린 창,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무덤. 산 자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죽은 자는 말 없이 자그마한 동산으로 남아 있는 곳, '요한의 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던 요한.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그는 예수님의 가슴에 가장 가까이 기대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 요한의 이름을 딴 이곳, '요한의 집'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할아버지의 사랑, 요한의 집에 담다

요한의 집이 이토록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곳에 담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친 할아버지는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땅을 기증하여 요한의 집을 짓도록 했습니다. 

건축가는 이러한 사연을 담아 할아버지의 아내 무덤이 잘 보이도록 집에 창을 내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요한의 집은 단순히 순례길의 한 코스를 넘어, 할아버지의 아내를 향한 깊은 사랑을 간직한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영원을 이야기하다

요한의 집에 문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이고,  창문을 통해 바라볼 땐 작은 무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개펄과 조그마한 무덤의 풍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합니다.

조그마한 동산은 더 이상 슬픔의 상징이 아닙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두 사람의 아름다운 결말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갈매기 소리는 마치 할아버지의 아내가 남편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섬티아고 순례길, 12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섬티아고 순례길은 단순히 걷는 여정을 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12사도의 삶을 되새기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요한의 집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 이야기는 순례길 여정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요한의 집에서 느끼는 감동

요한의 집은 단순히 건물을 넘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지속되도록 기도합니다.

섬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요한의 집에 다가가기 전 붉은 지붕이 가득한 조그마한 마을은 정겹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청색과 흰색이 있다면, 이곳 섬티아고에는 붉은색 집들이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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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섬티아고, 3번째 12사도의 집인 야고보의 집


섬티아고의 세 번째 순례지는 야고보의 집입니다. 이곳은 사도 요한의 형이자,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집입니다. 야고보는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최초로 순교한 제자로, 그의 순교 사실이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제자입니다.

현재의 섬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곳 대성당에는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많은 순례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그곳을 찾습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인물인 야고보 덕분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순례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야고보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김강'님이라는데 내부 설계가 좀...???

이곳의 섬티아고는 바로 그런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 만큼 이곳의 섬티아고 길도 유명세를 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겠죠? 그 기대는 적중하여 지난 코로나 19 팬더믹 시기에는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섬티아고를 찾았답니다. 

그런데 이곳 야고보의 집 내부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의외로 기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 방면의 벽면은 인도 그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장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자아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서, 왜 이런 장식이 존재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섬사람들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데, 이러한 비주얼은 분명 뭔가 어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조그마한 성당의 내외부를 둘러보며, 저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는 달리,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제게 이곳이 지닌 깊은 역사와 신앙의 의미를 흐릿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두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대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벽면의 모습은...???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뒷면 벽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곳 중앙에 십자가가 음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붉은 색은 예수 12제자 중 최초로 순교한 인물임을 상징하는 듯합니다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오로지 제 생각일 뿐...

이곳을 떠나면서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야고보의 유산이 이렇게도 다양한 해석과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를 지닌 이곳이, 또 다른 문화와 예술적 표현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은 순례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이교의 신을 섬기지 말고 오로지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의미 말이죠.

섬티아고는 단순한 순례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야고보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섬티아고의 매력은 그 깊이와 넓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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