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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롱꽃 명칭의 유래

초롱꽃은 조선시대 길을 밝혀주는 초롱불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초롱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초롱불은 흰색의 초롱불과 새색시들 시집갈 때 쓰던 청사초롱과 홍사초롱이 있었다. 우리 산하에 피고 지는 초롱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냥 초롱은 하얀색, 금강초롱은 연한 청색, 섬초롱은 연한 분홍색이다. 그러니 초롱불과 초롱꽃은 완전한 쌍을 이룬다. 특히 1965년 발견된 금강초롱은 한국 특산식물로 강원도 북부 산간지방에서 잘 자란다.

한편, 유럽에도 캄파뉼라(Campanula)라 불리는 초롱꽃이 있다. 캄파뉼라라는 단어는 반점이 있는 작은 종()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초롱꽃의 외양이 종과 흡사하다. 초롱꽃과()의 학명에는 캄파뉼라가 포함된다. 초롱꽃의 꽃말은 정의’, ‘충실’, ‘소원’, ‘감사이며, 금강초롱은 각시와 신랑’, ‘가련한 마음’, ‘청사초롱이다.

분홍색을 띄고 있는 섬초롱

2.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초롱꽃

티탄신 아틀라스(Atlas)는 헤스페로스(샛별)와의 사이에서 3명의 딸을 낳았다. 그녀들은 저녁의 아가씨들이라는 의미로 헤스페리데스(Hesperides)라 불려졌다. 헤스페리데스는 헤라 여신의 명으로 세상 서쪽 끝에 있는 축복받은 정원을 돌보는 임무를 맡았다. 그녀들이 축복받은 정원 '헤스페리데스'를 돌보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

헤라는 뻐꾸기로 변한 제우스가 빗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가엾이 여겨 품에 안았다가 하마터면 제우스에게 겁탈 당할 뻔했었다. 헤라는 제우스에게 자신을 정실부인으로 맞아 신성한 결혼의 수호여신으로 삼아주지 않으면 절대로 몸을 허락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제우스는 그녀의 조건을 수락하고서야 몸을 섞을 수 있었다. 제우스와 헤라는 청사초롱과 홍사초롱을 밝히며 결혼식을 올렸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ea)는 결혼선물로 헤라에게 황금사과를 주었다. 제우스와 헤라에게 가이아 여신은 할머니였다. 헤라는 가이아의 결혼선물에 매우 만족하였다.

그녀는 귀한 결혼선물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서쪽 끝 정원에 황금사과를 심었다. 황금사과는 썩어 싹이 나고, 성장한 나무는 황금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게 되었다. 헤라는 헤스페리데스 3자매에게 이 귀한 황금사과나무가 있는 정원을 관리하도록 했다. 그 후부터 그곳은 헤스페리데스 정원으로 불리게 된다.

섬초롱

어느 날 헤스페리데스 정원에 있던 나무들이 뽑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헤라는 헤스페리데스 자매들로는 황금 사과나무를 지키는데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여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과거 제우스와 생사의 대결을 벌이던 티폰(Typhon)이 전쟁 중에도 에키드나와 결합하여 키마이라와 라돈 등의 자녀들을 낳았었다.

헤라는 라돈(Ladon)이라는 용을 이 숲의 파수꾼으로 배치하였다. 강력한 화룡이던 라돈이 버티는 한 결코 황금사과를 훔칠 수 없었다. 그런데 신()인지 인간(人間)인지 알 수 없는 도둑이 황금사과를 훔치기 위해 헤스페리데스 정원에 숨어드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는 것이다.

헤스페리데스 정원과 관련된 그리스 신화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초롱꽃 전설에 등장하는 소녀가 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캄파뉼이었다. 캄파뉼은 헤스페리데스 3자매 중 한명의 딸이라는 것이다. 물론 확인된 신화는 아니다. 도둑이 들었을 당시 헤스페리데스 자매들은 잠시 자리를 비웠었고, 화룡 라돈은 졸고 있었던 것 같다.

캄파뉼은 도둑이 정원에 침입하자 라돈을 깨우려고 작은 종을 요란하게 쳐댔다. 다급해진 도둑은 종을 치지 못하도록 캄파뉼을 죽이고 도주해 버렸다. 힘없는 어린 소녀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캄파뉼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지만 헤라의 황금사과를 온전하게 지켜냈다.

꽃의 여신 플로라(Flora)는 종을 치다 죽어간 캄파뉼을 측은히 여겨 종의 모습을 한 초롱꽃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초롱꽃이 그녀의 이름과 작은 종이라는 의미가 담긴 캄파뉼라(Campanula)라는 것이다.

3. 초롱꽃 전설

또 다른 초롱꽃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어린 나이에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터에 나가 한쪽 다리를 잃고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온 마음 여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종을 쳐 적이 침입했을 때 위급함을 알렸고, 매일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성문을 여닫는 시간에도 종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성주(城主)는 종소리가 시끄럽다며 종을 치지 말도록 명령했다. 이제 그 누구도 종을 칠 수 없었다. 평생 종을 치는데 삶의 의미를 부여해 왔던 그는 서글픈 마음에 마지막 종을 치고는 종루에서 몸을 던졌다. 그 후 종지기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 종 모양의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초롱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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