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그 실로 베를 짰다. 1960년대 시골 마을에는 물레와 베틀이 많았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새끼를 꼬는 기계와 가마니를 짜는 틀도 농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아마 농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까?
7월 어느 날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비가 그치자 빗물에 축축이 젖은 물레나물이 화려함을 접고 꽃잎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실을 뽑는 물레가 돌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해서 물레나물이라 부르는 여름 꽃을 대하고 보니 그리스 신화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던 여인 아라크네가 떠오른다.
아라크네는 베 짜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녀의 베 짜는 모습을 보기위해 숲과 물의 요정들까지 찾아와 구경할 정도였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아테나 여신보다 더 좋은 베를 짤 수 있다고 떠들었다. 아테나(Athena, 로/미네르바Minerva) 여신은 지혜의 전쟁신인 동시에 베 짜는 아낙네들의 수호여신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테나 여신은 노파로 변장하고 아라크네를 찾았다. 그리고는 인간이 신을 경시하는 태도는 좋지 못하다며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자만과 어리석음으로 경솔한 말을 하였다. 아테나 여신쯤은 두렵지 않다며 언제든지 겨루기를 해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즉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아라크네의 베 짜는 모습을 지켜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던 모든 요정들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숙여 아테나 여신을 경배했다. 요정들의 경배에도 불구하고 아라크네는 자신의 솜씨를 과신한 나머지 아테나 여신을 경배할 마지막 기회를 외면했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었다. 두 여인은 물레로 실을 뽑아 베틀로 천을 만들기 시작했다. 속도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무늬가 각자 달랐다. 아테나 여신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경합했던 그림을 그렸다. 아테나는 자신이 강력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경합에서 승리했던 사실을 강조하였다. 여신은 이쯤에서 아라크네가 경기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기 원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들을 경멸하는 그림을 무늬로 새겨 넣기 시작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백조로 변해 레다를 안고 있는 모습과 황금비로 변해 다나에를 범하는 장면 등을 묘사했다. 아라크네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무늬로 새겨 넣어 모든 신들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아테나 여신이 승리했다. 아라크네의 천은 아테나 여신도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가 천에 새긴 무늬가 신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에 분노했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천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아라크네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을 이기지 못했다는 한(恨)과 굴욕감으로 베틀에 목을 매었다.
아테나 여신은 물레에서 뽑은 실로 목을 매 사지가 축 늘어진 여인을 다시 태어나도록 명했다. 죽었던 아라크네의 몸이 움직이면서 점차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아냈듯 몸을 허공에 던져 꽁지에서 실을 뽑아내는 거미로 변한 것이다. 실을 뽑아내기 위해 빙빙 돌리는 물레, 그 물레처럼 생긴 들꽃을 봤으니 어찌 아라크네가 생각나지 않겠는가.
베 짜는 솜씨가 서로 막상막하였지만 아테나 여신이 간발의 차로 아라크네를 이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테나가 포세이돈과 아테네 시(市)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경합할 당시 제우스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선물한 사람에게 아테네의 수호신 자격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포세이돈은 말을 선물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말이 힘껏 땅을 파자 샘물이 솟아났고 이 샘물을 인간에게 선물했다고도 한다. 이에 반해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 나무를 선물로 줬다. 아테나 시민들은 말과 올리브 나무를 비교한 결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올리브 나무가 말보다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이 팠다는 샘물과 올리브 나무에 대한 이설(異說)도 살펴보자. 바다의 신이 판 샘물이니 만큼 염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지리적 특성상 아테나 시의 샘물은 석회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순수한 샘물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에게 열매와 오일 등 갖가지 생활편의를 제공해 주는 올리브 나무가 더 유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와 베 짜기 경주를 할 당시 이러한 내용을 무늬로 새겨 넣으면서 올리브 이파리 사이에 나비를 한 마리 새겨 넣었다. 그 나비는 이파리 사이를 오가며 날개를 나풀거렸으며 더듬이와 다리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하여 진짜 살아있는 나비와 다를 바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나비를 보고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의 솜씨에 압도당해 스스로 승리를 아테나 여신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아라크네에 대한 이야기는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자만과 어리석음을 설명하고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Babel 塔)도 인간들의 오만방자함이 신들의 영역에 까지 침범하고 싶어 했던 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늘에 닿는 탑을 쌓고자 했던 노아(Noah)의 후손들은 하느님의 단죄로 각자 언어가 달라져 결국 탑을 완성하지 못했다.
성경이나 신화는 신들의 영역까지 도전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어리석은 자만을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그리스 신화 얘기지만 이런 곳에서 교훈을 찾아 매사에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면 오늘 말하고자하는 들꽃과 신화 이야기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물이라는 단어가 붙은 식물은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때 사용한다. 물레나물도 어린 순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깨끗한 물에 행군 다음 양념과 함께 버무리면 입맛을 돋우는 맛깔스런 반찬이 된다. 꽃말은 ‘임을 향한 일편단심’과 ‘추억’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간 기능 이상이나 지혈 등에 처방한다. 종기가 났을 때 물레나물의 식물체를 찧어 환부에 바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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