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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르푸르의 재앙

수단은 면적이 190만㎢에 이르는 큰 나라입니다. 다르푸르 지역만 해도 면적이 50만㎢, 한국의 5배에 이릅니다. 그런데 수도 하르툼의 중앙정부는 다르푸르를 늘 무시하고 소외시켰죠. 그러던 차에 사하라 주변 건조 지대인 사헬지역의 가뭄이 심해져 기근이 생겨 목초지가 줄어들자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다르푸르 지역으로 남하하여 원주민인 아프리카계 농경민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아랍계 유목민들은 1980년대부터 ‘잔자위드’라는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약탈을 저지르기 시작했죠. 학살과 납치와 노예 매매가 횡행하여 300만명이 난민이 됐고 30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위 '다르루프 재앙'입니다.

 

2. 수단의 독립과 쿠데타 과정

하르툼의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는 잔자위드를 척결하기는커녕 다르푸르의 저항을 찍어누른 뒤 잔자위드를 아예 정규군으로 편성했습니다. 그리고 잔자위드에 ‘신속지원군’(RSF)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악명 높은 군벌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를 2013년 지휘관으로 앉혔죠. 다갈로는 정규군이 된 조직을 사병처럼 운용했습니다. 금광, 목축업, 인프라 건설 등 온갖 사업에 손을 대 돈을 챙겼습니다.

오랜 독재는 적을 낳는 법이죠. 독재자 알바시르가 키운 군 장성 압델 파타흐 부르한이 2019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수도인 하르툼에선 알바시르의 30년 독재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르한은 시위대에 총구를 들이대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독재자 알바시르를 등에 업고 잔자위드(후에 신속지원군 RSF) 지휘관으로 출세한 다갈로는 자신의 은인인 독재자 알바시르를 몰아내는 쿠데타에 약사빠르게 신속히 가세했습니다. 자신을 키워준 알바시르와 손절하고 부르한 장군에게 붙어서  ‘하르툼 학살’의 악역을 맡은 것이죠. 당시 다갈로는 무자비한 살육자였습니다.

쿠데타의 승리자 부르한은 다갈로와 마찬가지로 다르푸르 지역이 정치적 발판이었습니다. 다르푸르 지역 정규군 사령관을 지낸 부르한은 지금은 독립국이 된 남수단과 벌인 전쟁에서도 수단군을 지휘했고, 2018년 육군 참모총장이 됐습니다. 그는 알바시르가 궁지에 몰린 사이에 슬그머니 중장으로 진급하더니, 쿠데타 뒤 과도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수단인들이 보기에 실세는 부의장인 다갈로였다고 합니다. 하르툼의 시위대를 짓밟은 주역은 다갈로의 군대였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부르한은 자신을 수단의 통치자로 만들어준 다갈로의 군대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부르한은 군 편제를 바꿔 다갈로를 몰아내려 했고, 이에 반발한 다갈로는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이것이 2023년 4월 수단에서 ‘두 군벌의 싸움’으로 알려진 무력충돌의 배경입니다. 그 중심에는 다르푸르에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이 있었죠.

 

3. 수단의 역사와 기독교계 주민 살해

하지만 이 혼란을 이해하려면 수단 내부의 정치 사정뿐 아니라 이 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치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수단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반도와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인구 4800만명 중 70%는 아랍계이고 나머지는 베자족, 누바족, 푸르족 등의 아프리카계입니다.

기원전 2500~1500년 케르마 왕국이 있었으나 이집트 신왕조에 복속됐다가 기원전 8세기 쿠시 왕국이 세워져 1000년을 갔었습니다. 기원후 4세기에 쿠시가 무너진 뒤 ‘누비아인’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여러 왕국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14~15세기 이후 아랍계 유목민들이 들어오면서 이슬람화됐습니다.

19세기에는 이집트와 오스만제국이 수단을 점령하고 노예 공급처로 삼았죠. 그 후 수십년은 이집트와 영국이 수단을 공동통치했습니다.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영국군을 축출한 이집트 새 정권은 수단을 놓아주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1956년 수단은 독립국으로 재탄생했습니다.이후의 역사는 쿠데타와 군부 독재로 점철됐죠. 

독립이후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도 및 아프리카계 주민이 많던 남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이에 내전이 일어났고, 2011년 1월 남수단이 갈라져 나간 원인이 됐죠.1989년 집권한 알바시르는 비무슬림 주민들을 탄압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학살했습니다. 그의 집권기에 30만~4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니 경제 사정은 당연히 나쁠 수밖에 없죠.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이 4000달러(약 530만원)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이며, 2021년엔 물가상승률이 380%를 기록했습니다. 성인 인구 40%는 글을 못 읽습니다.

 

3. 수단을 둘러싼 국제정세...독재자들은 오일머니 챙겨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단은 산유국으로 발돋움했죠. 50억배럴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에 눈독 들인 중국은 수단에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정권은 자원을 팔아 얻은 이익을 독식했고, 걸프 산유국들에 붙어 서방에 맞서는 시늉을 했습니다. 알바시르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됐으나, 아랍연맹 회원국들의 비호를 받으며 버젓이 걸프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 부르한과 다갈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쿠데타 뒤 부르한은 첫 외국 방문으로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갔고 다갈로도 동행했습니다.

부르한을 제치고 다갈로가 실세가 된 데에는 걸프국들의 후원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을 침공했을 때 신속지원군을 보내 도왔고, 리비아 내전에서도 아랍에미리트가 밀어주는 진영을 도우려고 병력을 보냈었습니다.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영국과 함께 ‘쿼드’(4자회담)를 만들어 수단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했습니다.

수단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두 나라는 수단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홍해 개발에 나선 사우디는 긴 바다를 공유하는 수단의 불안정을 원치 않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수단에 대규모 농업 투자를 해놨습니다.

이집트도 분쟁에 발을 걸쳤죠. 이집트는 내전 중인 두 군벌 중 부르한 쪽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집트는 뒷마당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걸 원치 않아서죠. 미국도 홍해에 러시아 기지가 들어설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남수단과 협력하여 수단 '다르푸르'의 기독교도 난민을 받아들이며 반이슬람 선전에 활용한 이외 수단에 대해 일관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2023. 4.17일 러시아의 용병회사 와그너그룹이 다갈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속지원군(RSF)을 보유한 다갈로는 수단의 주요 금광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러시아 용병회사 와그너에게 보안을 맡기면서 긴밀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갈로는 홍해의 석유 수출항인 포트수단에 군사기지를 짓게 해줄 수 있다며 러시아에 손짓을 했는데, 이는 러시아 용병회사와 무관치는 않아 보입니다.

한편, 수단에서는 지난 2023. 4. 15일부터 수도 하르툼을 중심으로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신속지원군(RSF) 사이에 무력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양측 교전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400명이 숨지고 3천500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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