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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바람의 길, 시몬의 여정

시몬의 집은 문이 없다. 뻥 뚫린 구조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음껏 드나든다. 그 바람은, 마치 시몬 자신처럼 속박 없이 자유롭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열한 번째 작은 교회에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벤치에 앉아 넓게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며, 그가 걸었던 길을 상상해 본다.

그는 “가나나인 시몬” 혹은 “셀롯”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에는 그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갈릴리에서 태어나 로마의 압제 속에 자랐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그의 마음은 가난하고 억눌린 동포들을 위한 저항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가 속했던 셀롯당은 로마에 대항하며 유대인의 자유를 외쳤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투쟁이었다. 칼과 피로 이루어진 해방이 전부인 시대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저항의 연속이 아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또 다른 열정을 깨달았다. 그 열정은 단지 칼로 이루는 정의가 아닌, 사랑으로 이루는 해방이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한 순간, 시몬의 발걸음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가롯 유다와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했으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제자들과 함께 복음의 메시지를 품었다. 그의 과거는 이제 주님 안에서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시몬은 자신의 열정과 신앙이 시험받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로마에 대한 분노와 복음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는 마침내 사랑과 평화가 진정한 해방의 길임을 깨달았다.

시몬은 주님이 떠난 후, 복음을 들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그의 여정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끊임없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나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그 길 위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 열정은 이제 칼이 아닌 복음의 불꽃이었다.

그의 집은 그래서 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이 없어야만 자유롭게 바람이 드나들고, 사람들도 두드림 없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의 삶 자체가 그렇게 열려 있었다. 그는 누구든 받아들이고, 누구와도 함께하며, 복음을 나누었다.

나는 바닷바람 속에서 시몬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의 열정과 믿음이 이 작은 예배당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시몬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의 길 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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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섬티아고, 3번째 12사도의 집인 야고보의 집


섬티아고의 세 번째 순례지는 야고보의 집입니다. 이곳은 사도 요한의 형이자,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집입니다. 야고보는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최초로 순교한 제자로, 그의 순교 사실이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제자입니다.

현재의 섬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곳 대성당에는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많은 순례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그곳을 찾습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인물인 야고보 덕분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순례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야고보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김강'님이라는데 내부 설계가 좀...???

이곳의 섬티아고는 바로 그런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 만큼 이곳의 섬티아고 길도 유명세를 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겠죠? 그 기대는 적중하여 지난 코로나 19 팬더믹 시기에는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섬티아고를 찾았답니다. 

그런데 이곳 야고보의 집 내부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의외로 기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 방면의 벽면은 인도 그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장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자아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서, 왜 이런 장식이 존재하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섬사람들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데, 이러한 비주얼은 분명 뭔가 어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조그마한 성당의 내외부를 둘러보며, 저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는 달리,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제게 이곳이 지닌 깊은 역사와 신앙의 의미를 흐릿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두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대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벽면의 모습은...???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뒷면 벽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곳 중앙에 십자가가 음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붉은 색은 예수 12제자 중 최초로 순교한 인물임을 상징하는 듯합니다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오로지 제 생각일 뿐...

이곳을 떠나면서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야고보의 유산이 이렇게도 다양한 해석과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를 지닌 이곳이, 또 다른 문화와 예술적 표현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은 순례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이교의 신을 섬기지 말고 오로지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의미 말이죠.

섬티아고는 단순한 순례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야고보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섬티아고의 매력은 그 깊이와 넓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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