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특산 1속 1종의 식물
부엽토가 그윽이 쌓여 습기가 가득한 저기 저곳에 이름 모를 하얀색 꽃이 발걸음을 잡아끈다.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살펴보니 틀림없는 모데미풀이다. 사진에서만 봐 왔던 식물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사진에서는 계곡의 아주 습한 곳에 피어 있었는데 이곳은 물가가 아니라서 더욱 신기하다.
모데미풀은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이다. 그러니 모데미풀이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다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환경부는 모데미풀속(屬)에 속하는 1속(屬) 1종(種)의 이 식물을 멸종위기식물로 지정하여 해외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모데미풀은 중요한 식물로 우리에게 보전가치가 높으나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원예종으로 키울 수 없기에 더 더욱 희귀하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아름다움을 뽐내는 연약한 꽃은 망망대해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었을 연약한 에우로페를 생각나게 한다.
# 이후부터는 고대 그리스문명을 설명하기 위해 모데미풀을 연상시켜 글을 썼을 뿐 모데미풀과의 실제적인 연관성은 없다.
2. 에우로페와 유럽의 탄생
그리스 신화에도 모데미풀처럼 애잔하면서도 가냘픈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우로페(Europe)였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만지면 깨질세라 애지중지 아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우로페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꽃이 피기 시작하자 하얀 꽃들을 만지며 그 향기를 들이키고 있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Zeus)는 마치 모데미풀의 흰 꽃처럼 연약한 듯 하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에우로페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천하의 난봉꾼이던 제우스는 흰 황소로 변신하여 그녀 곁을 어슬렁거렸다. 에우로페는 너무 멋진 황소가 나타나자 아름다운 데이지꽃을 꺾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황소의 목에 걸어주며 좋아했다.
천천히 황소를 바라보던 에우로페는 황소의 미끈한 등에 시선이 닿았다. 그녀가 무릎 꿇은 황소의 등에 슬며시 엉덩이를 걸치자 제우스는 그녀를 태운 채 쏜살같이 내달렸다. 소아시아의 페니키아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 제우스는 곧바로 바다를 헤엄쳐 크레타(Crete) 섬에 당도했다.
에우로페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황소의 등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었다. 가냘프고 애잔한 모데미풀과 같았던 에우로페는 크레타 섬에서 제우스의 사랑을 듬뿍 받아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 등 3남매를 낳게 되었다. 황소로 변했던 제우스가 크레타 섬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뒤 어슬렁거리다 쓰러져 쉬었던 풀밭에 크노소스 왕궁이 세워졌다.
모데미풀처럼 연약하고 애잔한 에우로페(Europe)는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그리스로 건너간 여인이었다. 이 여인으로 인해 크레타 섬에 그리스 최초의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것은 곧 유럽문명의 시작이었다. 에우로페(Europe)의 이름에서 영어의 유럽(Europe)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는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에우로페의 이동과정은 소아시아 서부해안에 거주하던 이오니아(Ionia)의 민족들이 그리스의 도서지역으로 이주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유럽문명의 기초가 바로 소아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 아시아의 문명이 유럽문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오니아 지방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내륙의 도시들까지 그리스 해양세력이 진출하여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발전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입김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데미풀을 보면서 연약하기 그지없던 에우로페의 모습을 연상해 본다.
3. 최초의 고대 그리스 문명 탄생과 전이과정
제우스의 후손이 크레타 섬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최초 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미노스는 형제들과의 왕권 경쟁에서 승리하여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그리스 최초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을 꽃 피우게 된다. 미노아 문명(Minoan)은 기원전(B.C.) 2000년∼1400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627∼1600년경의 산토리니 섬 화산폭발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크레타 섬의 연안을 강타하여 많은 시설들이 파괴됨에 따라 점차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B.C.)1500년∼1100년경에는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 본토 미케네로 문명이 점차 전이되어 미케네 문명(Mycenean)이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게 되었다. 물론 크레타 섬에서 본토로 문명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본토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크레타 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제압하는 신화가 등장한다.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죽음은 크레타 섬의 패권이 점차 끝나가고 있음을 나타내며, 테세우스의 등장은 그리스의 패권이 점차 본토로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케네 문명에 속한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던 기원전(B.C.) 1250년경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주도로 트로이 전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기원전(B.C.) 1100년경 번성하던 미케네 문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리스는 거의 400년 동안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이때 도리아인이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도리아인들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이오니아인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B.C.) 8세기경부터 각각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닌 도시국가(Polis)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백여 도시국가들 중 가장 발전된 도시국가는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토스, 테베 등 4개국이었다. 이 시기부터 스파르타가 25년간에 걸친 펠로포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를 제압(B.C. 404년)했던 때까지를 아테네 문명기(B.C. 700년∼400년)라고 부른다.
아테네 문명기였던 기원전(B.C.) 490년과 그로부터 10년 뒤인 기원전(B.C.) 480년에는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발발하였다. 물론 이때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동방국가인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냈다. 우리들은 흔히 그리스가 동방세력의 침입을 막아내고 유럽문명을 지켜냈다며 그리스를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전쟁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했더라면 아마도 유럽문명을 동방의 아시아가 주도했을 것이다.
4. 우리의 토종식물 모데미풀
우리 선조들은 모데미풀을 고산지대 계곡이나 개울가의 습한 곳에서 흔하게 보아왔었다. 그러나 당시는 식물 종(種)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일제치하인 1935년 일본의 식물학자 오이(Ohwi)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전북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 마을 근처 계곡에서 이 식물을 발견했다.
그 후 이 식물에 발견지역의 이름을 붙여 모데미풀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 국민이 아닌 일본인이 발견해서 일까. 꽃말이 ‘아쉬움’또는 ‘슬픈 추억’이다. 참! 모데미풀이 발견됐다는 모데미 마을이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남원시 운봉읍으로 바뀐 곳을 인터넷 등의 자료를 확인한 결과 단지 모뎀골에 모데미 고개라는 지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모데미풀은 주로 백두대간을 따라 중북부 이남지역의 산골짜기에 자생하고 있다. 고산의 주능선 근처나 북사면의 습한 곳에 서식하는 다년생초인 모데미풀은 더위에 몹시 약하다. 그러니 산을 내려오면 살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 이내 죽어버린다. 아름답다고 집에서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이 식물을 채취하여 화분에 옮겨 심는다면 100%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의 채취와 이식(移植)은 귀중한 모데미풀의 개체수를 줄이는 주요인이 되고 있음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싹을 틔울 날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 언 땅이 채 녹기도 전에 살포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다 해빙된 계곡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박깜박 고개를 떨구는 모데미풀, 그 하얀 꽃모습에 산골짝의 바람도 비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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