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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산책로의 단풍

내가 이곳에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산책로가 한산하고 여유롭기 때문이다. 원래 밤에 산책을 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으나, 오늘 만큼은 오후 늦은 시간에 산책을 하고 싶었다. 산책하는 내내 다른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아마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사태 때문에 사람들이 외출을 꺼려해서 그런 듯하다. 

쓸쓸한 가을 산책하는 사람도 없어

산책길은 쓸쓸한 가을정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계절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그토록 덥고 뜨거웠던 여름이 언제였던가? 여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푸르른 녹음은 지나갔고, 울긋불긋한 색조가 온통 세상을 덮었다. 일상의 기온과 세상의 색깔은 가을을 선호하게 만들지만, 왠지 세월이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땅거미가 지는 가운데 억새풀이 아름다워

나이가 든다는 생각은 앞으로 살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가을에 자신이 늙어감에 대해 서글픔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늙어가는 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그 만큼 지혜로워 질 수 있음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힌 세상을 보면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억새풀이 아파트 보다 키가 커

이제 100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오래 살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마음의 풍요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아픈 데 병원에 가지 못한다면,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가 없다면, 그리고 자녀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풍요가 더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가을의 결실 대추도 울긋불긋 물감으로 채색돼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탁자 위에 붉은 물감으로 색칠된 대추가 놓여있다. 요즘 대추는 사과대추니 가분수대추니 해서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대추를 입에 무니 그 단맛이 미각을 자극한다.

아들 녀석은 이미 품을 떠나 독립했고, 딸아이는 박사과정 공부다 해서 얘기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고, 아내는 혼자의 삶을 통달하기라도 한 듯 남편은 눈 밖의 존재인 듯하다. 나 홀로 남았다. 이제야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만물이 시들어가는 가을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사는 것을 무거워 하지 않고, 홀로 됨에 서글퍼 하지 않으며, 혼자만의 여유와 느긋함을 즐겨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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