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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처럼 꼬인 타래난초

1. 타래난초의 생존비법

세상은 돌고 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로,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환희로, 음지가 양지로, 양지가 음지로, 그렇게 세상만사 돌고 돈다. 나이테도 돌고 돌아 세월의 흐름을 표출한다. 저기 저 풀밭 속의 키 작고 꼿꼿한 타래난초도 작은 방울꽃을 휘감아 빙빙 돈다.

애써 찾아 볼 땐 보이지 않더니 그냥 털썩 주저앉은 바람 부는 언덕배기 한 켠에서 술래 잡듯 보일락 말락 방울꽃을 흔들어 댄다. 아하! 드디어 찾았다. 아니 나를 찾아왔다.

꽃이 아래로부터 실타래처럼 꼬여 피기 때문에 타래난초라고 부른다. 어렸을 적 꽈배기를 먹던 생각이 절로 나는 꽃이다. 곱고 여린 소녀처럼 순수하게 피어난 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늘을 향해 피어간다. 점차 시들어 가는 아래쪽 꽃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위쪽으로 피어나는 싱싱한 꽃은 순수한 처녀성을 자랑한다. 그래서 꽃말이 추억소녀.

타래난초는 잔디나 잡초 사이에서 자라난다. 타래난초의 씨앗은 너무도 작아 발아에 필요한 양분조차 없다. 그래서 잔디 뿌리 등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균을 이용한다. 타래난초의 씨앗은 자신의 몸에 균이 기생하도록 한 다음 그 곰팡이 균의 영양분을 흡수해 버린다.

자칫 잘못하면 균의 침입으로 자신의 몸이 분해돼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항상 이 방법을 이용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타래난초의 생존전략이 돋보인다. 타래난초는 씨앗에 의해 번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키울 때는 포기를 나눠 심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이때 타래난초 곁에 잔디를 조금 심어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타래난초는 실타래처럼 비비꼬여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은 실타래를 보기 어렵지만 우리 세대는 매일 실타래를 보며 자랐다. 타래를 다른 말로 바꿔 본다면 매듭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타래가 꼬여서 커다란 매듭이 되기 때문이다. 타래난초를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생각해 본다.

2. 타래난초와 고르디우스의 매듭

고르디우스는 원래 가난한 농부였다. 현재의 터키 내륙 소아시아에 위치한 프리기아 지방 사람들은 신탁(神託)을 받았었다. 신탁 내용인즉 미래의 왕은 짐마차를 타고 온다는 것이었다. 이때 고르디우스가 짐마차에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광장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고르디우스는 프리기아의 왕으로서 자신의 짐마차를 신에게 바치고 튼튼한 매듭을 만들어 그 짐마차를 기둥에 단단히 묶어놓았다. 이 매듭이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그 후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전체 아시아 땅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숱한 사람들이 이 매듭을 풀기위해 도전했으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생긴 타래난초

기원전(B.C.) 334년경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알렉산더Alexander)가 동쪽으로 원정을 가던 중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땅에 이르렀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칼을 뽑아 한 칼에 매듭을 베어버렸다.

어찌됐든 실타래처럼 비비 꼬인 매듭이 풀린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동방원정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그때서야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매듭의 의미를 깨달았다.

3.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역사적으로 너무도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자.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300떨어진 올림포스 산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왕국이었다. 기원전(B.C.) 356년 알렉산드로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필리포스 2(Phillippos )는 그리스 도시국가 최초로 직업군인을 창설하여 상비군 체제를 유지했다. 또한 필리포스 2세는 5.5m에 달하는 긴 창으로 이들을 무장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농민들이 군역을 부담했던 관계로 주로 농한기에만 전쟁을 해 왔었다.

아버지가 창설한 상비군 체제를 바탕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부왕 필리포스가 살해되자 군인들의 추대를 받아 기원전(B.C.) 336년 마케도니아 왕으로 등극했다. 그는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테베가 반란을 일으키자 테베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전 테베시민들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기원전(B.C.) 335년에는 아테네를 점령하여 명실상부한 그리스 문명의 지배자가 되었다. 당시 최대 제국은 다리우스 3세가 통치하던 페르시아였다.

기원전(B.C.) 334년 알렉산드로스 왕은 37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헬레스폰토스(현재의 다르다넬즈) 해협을 건너 동방원정을 단행하였다. 헬레스폰토스 해협은 폭이 4에 불과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경계였다.

현재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에 들어 선 알렉산드로스는 그라니쿠스 강에서 페르시아 군과 첫 격전을 치르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남하하여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향해 전진하였다.

기원전(B.C.) 33110월 그리스 군은 티그리스 강 인근 가우가멜라 평원에 진을 치고 있는 25만 명의 페르시아 군과 혈전을 벌여 승리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불태워 옛 페르시아의 영화를 일시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페르시아의 왕궁을 불태움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페르시아의 지도자임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이라크의 땅에 있는 페르시아 제2의 도시 바빌론에 무혈 입성한 것은 바빌론의 지도자가 알렉산드로스를 진정한 지도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알렉산드로스는 23개 주()로 나눠져 있던 도시들을 페르시아 지방장관이 다스리도록 했다. 유럽(Europe)과 동방(Orient)의 문화가 충돌을 거쳐 융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바로 그리스 문화가 동방 문화에 영향을 끼친 헬레니즘(Hellenism)이 탄생하였다.

이때부터 동방원정의 공을 인정받아 페르시아의 지방도시를 다스리기를 원했던 부하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떠난 후에도 7년 동안 원정을 계속한다. 알렉산드로스는 6천 미터의 고봉들이 즐비한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다.

그리고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에 위치한 세계 문화의 교차로이자 교역의 중심지 사마르칸트(Samarkand),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수도인 카불(Kabul)을 거쳐 인도의 인더스 강 지류인 베아스 강에 이르렀다. 베아스 강 건너에는 인도 군이 집결해 있었다. 그곳에서 마케도니아 장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며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을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쩔 수 없이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그 후 3년 뒤 알렉산드로스는 열병에 걸려 총 11년에 걸친 원정을 끝내고 기원전(B.C.) 323년 페르시아 제2의 도시 바빌론에서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생전에 단행한 대원정은 3에 달했다. 그는 정복했던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고 칭했다. 그 당시에는 무려 7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가 존재했으나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유일하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그리스, 이집트, 동부 아시아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인도가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알았다. 스페인이 남미대륙을 정복할 당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알렉산드로스도 그리스 문명을 미개한 동방국가에 전파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러한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는 아테네에서 초빙된 개인교사 소크라테스(Socrates) 때문이었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그리스 문명만이 세계 최고의 문명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물론 동방원정 중에 알렉산드로스는 동방문명도 그리스 문명에 못지않은 훌륭한 문명임을 깨닫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어찌됐든 알렉산드로스는 당시 그리스 인들이 세상의 끝으로 알고 있던 인도까지 동방원정을 단행하여 성공했다. 그러니 그에게 대왕(the Great)의 칭호가 붙는 것이 당연시됐다.

신탁이 실현된 고르디우스의 매듭인 양 비비 꼬여진 타래난초

알렉산드로스는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 건설을 통해 동서 문명의 충돌과 융합이라는 굴곡의 역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내려진 신탁이 실현된 것이다. 고르디우스는 황금의 손, 즉 마이더스의 손(The Midas Touch)’으로 유명한 미다스의 부왕(父王)이다. 고르디우스의 아들 미다스 왕에 대한 이야기는 갈대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타래난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꼬여있다. 실타래를 꼬아 만든 매듭, 그 매듭과 실타래를 닮은 타래난초는 마치 사촌인 양 잘 어울린다. 한방에서는 타래난초를 용구(龍拘)라 하여 종기 치료와 기침을 완화시키는 진해제로 사용한다. 또한 병을 앓고 난 후 허약할 때 이 풀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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