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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의 집, 그 끝섬으로의 순례

만조 때는 감히 발길조차 닿을 수 없는 곳, 물이 차오르면 섬은 고립되어 버린다. 그러나 물이 빠진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끝섬에 다다를 수 있다. 가롯 유다의 이름을 딴 이 작은 섬은, 그의 비극적이고도 어두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끝섬에 발을 들이면,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고딕 양식의 아담한 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첨탑과 기와가 어우러진 지붕은 마치 묵직한 침묵 속에서 속죄와 반성을 속삭이는 듯하다.

그 앞에는 나선형으로 꼬아 올린 벽돌 종루가 서 있다. 이 종루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기념하며, 또한 순례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H.J Mun님이 순례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을 12번 친다.

열두 번의 종소리를 울릴 때마다, 순례의 발걸음이 12km의 길을 걸어온 여정을 마무리했음을 깨닫는다. 종소리는 순례의 끝을 알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고요한 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가롯 유다의 비극적인 선택과,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뒤틀리고 꼬인 삶을 마주보게 한다.

‘가롯 유다의 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각자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후회와 속죄를 떠올리게 하며,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로 순례자를 이끈다.

H.J MUN 님이 성당안에서 마지막 기념의 말을 적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예수께 입맞춤하던 유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돈주머니를 쥔 그의 손, 그리고 스승을 배신했던 그 찰나의 선택. 그는 비록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이야기는 오늘도 끝섬에서 새겨지고 있었다.

11번째 순례지와 12번째 순례지의 중간 바다에 서서

붉은 종루 아래에서 마지막 종을 치며, 나는 그곳에 온전히 서 있었다. 가롯 유다의 고독이 깃든 곳에서, 내게도 깊은 고독과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순례길에서 배운 성찰과 회복의 의미를 품고 살리라고.

가롯 유다의 집은 끝섬에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 한구석 끝자락에도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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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바람의 길, 시몬의 여정

시몬의 집은 문이 없다. 뻥 뚫린 구조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음껏 드나든다. 그 바람은, 마치 시몬 자신처럼 속박 없이 자유롭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열한 번째 작은 교회에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벤치에 앉아 넓게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며, 그가 걸었던 길을 상상해 본다.

그는 “가나나인 시몬” 혹은 “셀롯”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에는 그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갈릴리에서 태어나 로마의 압제 속에 자랐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그의 마음은 가난하고 억눌린 동포들을 위한 저항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가 속했던 셀롯당은 로마에 대항하며 유대인의 자유를 외쳤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투쟁이었다. 칼과 피로 이루어진 해방이 전부인 시대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저항의 연속이 아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또 다른 열정을 깨달았다. 그 열정은 단지 칼로 이루는 정의가 아닌, 사랑으로 이루는 해방이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한 순간, 시몬의 발걸음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가롯 유다와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했으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제자들과 함께 복음의 메시지를 품었다. 그의 과거는 이제 주님 안에서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시몬은 자신의 열정과 신앙이 시험받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로마에 대한 분노와 복음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는 마침내 사랑과 평화가 진정한 해방의 길임을 깨달았다.

시몬은 주님이 떠난 후, 복음을 들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그의 여정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끊임없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나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그 길 위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 열정은 이제 칼이 아닌 복음의 불꽃이었다.

그의 집은 그래서 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이 없어야만 자유롭게 바람이 드나들고, 사람들도 두드림 없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의 삶 자체가 그렇게 열려 있었다. 그는 누구든 받아들이고, 누구와도 함께하며, 복음을 나누었다.

나는 바닷바람 속에서 시몬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의 열정과 믿음이 이 작은 예배당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시몬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의 길 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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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타대오(Jude Thaddaeus)는 가롯 유다가 아니다.

루가 복음 6장 16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의 12사도 명단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다(Judas)이고,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타대오라 부르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옷(가롯) 사람 유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둣길을 따라 소악도에서 진섬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한 유다 다대오의 집이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다. 뾰족한 지붕과 하얀 벽은 햇빛을 받아 빛나며,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마치 영원의 경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순례자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이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2000년을 거슬러 이어진 믿음의 이야기를 오롯이 품고 있다.

유다 다대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흔히 '유다'라는 이름 때문에 '가롯 유다(유다 이스카리옷)'로 오해를 받곤 하지만, 그의 삶은 온전히 신실함과 헌신으로 채워져 있다. '다대오'라는 별칭은 그의 부드럽고 열정적인 성품을 의미한다고 전해진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던 제자였다.

특히 그의 이름은 소외된 자와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빛난다. 초대 교회에서 다대오는 안티오키아,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등지로 복음을 들고 나아갔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따뜻한 환대와 치유의 흔적이 남았다. 그는 끝내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했지만, 그의 흔적은 전해지는 기도와 전승 속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있다.

진섬 삼거리에서 그를 기리는 공간을 마주하면, 유다 다대오가 남긴 희생과 헌신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순례자의 마음은 어느새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묻는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 속에서, 다대오의 생애는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을 가르친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늘과 바다의 경계처럼 뚜렷한 신앙의 길이 떠오른다. 유다 다대오, 그의 이야기는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진다. 삶의 여정 속에서 때로 흔들릴지라도, 그의 믿음과 사랑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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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8번째 코스인 기쁨의 집, 마태오의 집에서의 성찰

섬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8번째 순례지, 소기점도에서 소악도로 이어지는 노둣길의 갯벌에 위치한 마태오의 집.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입구에서부터 황금빛 양탄자로 계단을 수놓은 듯 마치 황금 궁전에 들어서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황금빛은 과연 마태오의 집 애칭인 기쁨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기쁨의 집 안으로 들어가 사방의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그곳에서 펼쳐진 풍경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살며시 던져 주었다. 만조 때 바다의 물결이 살랑거리고,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전에 스치면 '기쁨의 의미가 바로 이곳에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가슴에 가득 찬다.

작은 성당에 들어서 밀물에 고립되고, 썰물에 다시 길을 걸어가는 반복의 일상.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 노여움와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리라. 어쩌면 인생이란 이 모든 감정을 겪으며 진정한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기쁨의 집에서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노둣길 옆으로 찰랑찰랑 차오르는 바다의 향기,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어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양한 감정들이 어우러져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또한 완전 밀물이 될 때 마태오의 집에서 고립된 채 명상과 묵상을 하는 우리들은 천국의 기쁨을 느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L0hW7We3Y3k

우리 일행은 어느 어부의 배를  타고 만조 때에 마태오의 집에 다가갔다. 보트의 스피드, 물결의 갈라짐,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찰랑거리는 물결이 마태오의 집 곁을 때릴 때 완전히 환희에 젖어 소리를 질러댄다.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을 찾아간다. 기쁨의 집, 마태오의 집에서의 경험은 그 여정에서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기쁨이란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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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벽과 모로코 블루의 조화, 인연의 집이라 불리는 토마스의 집을 찾아서

한적한 섬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집이 하나 있습니다. 하얀 벽과 모로코 블루가 어우러진 이곳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집 외벽 한쪽에는 독특한 조각처럼 그려진 물고기와 둥근 떡이 눈길을 끕니다. 이 그림은 성경 속 오병이어 (五餠二魚) 의 기적을 상징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은혜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경건한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내부 중앙에는 제대가 자리하고, 그 뒤로는 두 개의 촛대가 나란히 진열돼 있습니다. 촛대 위로는 십자가 모양의 창문이 조용히 빛을 받아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묵상하는 시간은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줍니다.

이곳에서 도마(Thomas) 사도에 대한 묵상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도마는 그 현장에 없었기에 사도들의 증언을 의심했습니다. "그분의 못 자국을 보고,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그의 말은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못 자국과 옆구리를 직접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제야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며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지요. 그 뒤부터 '의심많은 도마'라는 별칭이 붙게 되죠.

예수님께서는 그런 도마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집은 "인연의 집"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신혼부부가 사진 촬영 장소로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얀색과 모로코 블루의 조화로운 색감은 누군가에게는 성경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모로코의 낭만적인 카사블랑카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마치 사랑과 믿음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당신도 잠시 시간을 멈추고 깊은 묵상과 싱그러운 추억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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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내부의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유리성(城). 그곳이 바로 바르톨로메오의 집입니다. 예수님처럼 갈릴리 호수를 걸어갈 수 없기에 예수님의 기적을 묵상하면서 호숫가에서 나의 모습을 담아 기념촬영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나의 옆 뒤쪽의 유리성이 바르톨로메오의 집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으로, 요한복음에서는 나다나엘(Nathanael)로 불립니다. 성경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적지만, 요한복음 1장 45-51절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며 그의 존재가 처음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며 칭찬하셨고, 이 만남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순교할 때 피부가 벗겨지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선교 덕분인지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화 합니다. 

로마가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서기 380년에 이르러서야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선포하게 되면서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에 비해 79년이나 앞서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이 바르톨로메오, 즉 나다나엘의 선교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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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5번째로 찾아간 곳은 빌립의 집이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빌립을  '필립보'라고 부릅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노두길이 시작되는 곳, 그곳 한 켠에 자리잡은 빌립의 집은 커다란 십자가 창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어찌보면 가장 교회다운 곳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니 제대가 놓여있다.

지붕은 마치 물고기 비늘과 같이 반원형을 잘라진 나무로 덮어 놓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물고기 형상이 십자가처럼 하늘을 뚫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형태의 교회입니다. 문 위의 창문은 돌절구를 잘라 붙인 것으로 낭만적인 섬 문화를 되새겨 보게 만듭니다. 

조그마한 교회 왼편으로 노둣길이 보입니다.

빌립의 집 낮은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노둣길은 모세가 홍해를 갈랐던 사건을 기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간조 때라 이미 물이 갈라져 있습니다. 이제 홍해를 건너가듯 신안 앞바다를 가르며 도보로 걸어야 겠죠?

십자가 유리창문

빌립은 예수님과 함께 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종종 다른 제자들과 함께 등장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일으키기 전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이 사람들을 먹일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빌립(필립보)은 “200데나리온 어치로도 모자를 것 같습니다.” 라고 답했고, 안드레아도 "여기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앙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곧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려고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봤던 거죠. 그때까지도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아닌 지상의 쌀밥도 먹지 못한 채 점심시간을 넘겨서도 다음 여정을 향해 걸어갑니다. 아침과 점심도 쫄쫄 굶은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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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순례길 위, 요한의 집에서 바라본 영원한 사랑 이야기

"창문을 통해 작은 무덤에 닿은 시선,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노래"

산 자와 죽은 자를 향해 열린 창,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무덤. 산 자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죽은 자는 말 없이 자그마한 동산으로 남아 있는 곳, '요한의 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던 요한.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그는 예수님의 가슴에 가장 가까이 기대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 요한의 이름을 딴 이곳, '요한의 집'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할아버지의 사랑, 요한의 집에 담다

요한의 집이 이토록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곳에 담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친 할아버지는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땅을 기증하여 요한의 집을 짓도록 했습니다. 

건축가는 이러한 사연을 담아 할아버지의 아내 무덤이 잘 보이도록 집에 창을 내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요한의 집은 단순히 순례길의 한 코스를 넘어, 할아버지의 아내를 향한 깊은 사랑을 간직한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영원을 이야기하다

요한의 집에 문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이고,  창문을 통해 바라볼 땐 작은 무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개펄과 조그마한 무덤의 풍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합니다.

조그마한 동산은 더 이상 슬픔의 상징이 아닙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두 사람의 아름다운 결말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갈매기 소리는 마치 할아버지의 아내가 남편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섬티아고 순례길, 12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섬티아고 순례길은 단순히 걷는 여정을 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12사도의 삶을 되새기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요한의 집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 이야기는 순례길 여정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요한의 집에서 느끼는 감동

요한의 집은 단순히 건물을 넘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지속되도록 기도합니다.

섬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요한의 집에 다가가기 전 붉은 지붕이 가득한 조그마한 마을은 정겹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청색과 흰색이 있다면, 이곳 섬티아고에는 붉은색 집들이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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