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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2일 본인이 경기신문의 '경기춘추' 칼럼에 기재한 내용입니다. 스테가노그라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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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밀레토스 왕 히스티아이우스(Histiaeus·?~BC 494)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Ⅰ)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었다. 히스티아이우스는 다리우스의 눈을 피해 노예의 머리를 깎은 뒤 두피에 문자를 새기고 머리카락이 다 자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노예를 밀레토스로 보냈다. 노예는 머리카락 덕분에 페르시아의 검색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가 억류돼 있는 동안 그의 사위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BC 497)가 밀레토스를 섭정하고 있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노예의 머리를 깎아 두피에 새겨진 글을 읽고, 글의 내용대로 행동에 착수했다. 이오니아의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이때 히스티아이우스는 다리우스 1세에게 자신이 반란을 무마하겠다고 설득하여 페르시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hy)의 첫 사례다. 그리스어로 스테가노(stegano)는 ‘숨겨진’이라는 뜻이고, 그라피(graphy)는 ‘글’이라는 의미다.

고대의 숨겨진 글처럼 현대의 ‘스테가노그라피’도 인터넷 등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암호기법으로 발전하였다. 오디오, 비디오 또는 이미지나 텍스트 등 커버(cover)라 부르는 미디어에 비밀 메시지를 숨겨서 전송하는 방법이다.

2001년 미국의 9·11테러 당시 주모자 빈라덴과 테러범들이 인터넷을 통해 비밀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테가노그라피가 화제에 올랐다. 또한 2010년에는 러시아 대외첩보부(SVR) 소속 비밀요원 11명이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다정한 이웃으로 살면서 스테가노그라피 기법으로 본국과 비밀 메시지를 교환해 오던 중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언론인 자주민보 대표는 2005년 10월부터 스테가노그라피 기법을 활용하여 대남공작기구인 북한 노동당 225국(대외연락부)에 수십 차례 이메일을 발송하여 유죄가 확정되었다. 2011년에는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주범과 지하당 조직원들이 스테가노그라피 기법으로 대남지령문과 남한정세 보고문을 북한에 전송하여 유죄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3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통합진보당 이석기의 비밀혁명조직(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조직원 PC에서도 영화파일과 음악파일에 각종 이적표현물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2014년 새해벽두부터 통합진보당원이 스테가노그라피 기법을 사용하여 북한에 안착보고문과 충성맹세문을 보내 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통진당의 정체성이 심히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북한 공작원들은 ‘모르스’ 부호, 대남 숫자암호 방송과 이를 해독하기 위한 난수표 등을 시작으로 스테가노그라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호기법을 활용해 왔다. 특히 이석기 사례에서 보듯 과거 통진당원의 경우 기존의 그림이나 동영상 파일이 아닌 압축파일(zip)로 암호화하는 진화된 방식을 선보여 정보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8월 말 RO총책 이석기 집에서 CD 1장을 확보한 후 자체 전문가를 모두 투입하였는데도 암호를 푸는 데만 석 달 넘게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독된 CD에는 무려 142건에 달하는 이적표현물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스테가노그라피를 해독하는 데는 시간적·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그마저도 잘해야 본전이고, 그렇지 못하면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밀 메시지를 암호화(coding)하고 이를 해독(decoding)하기 위해서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보유한 것과 동일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면 그들의 음모를 밝혀내지 못한 뿐더러 증거자료로도 사용할 수 없다. 간첩통신으로 불리는 ‘스테가노그라피’는 이번 압축파일 암호화에서 보듯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에 대처하는 우리 정보당국의 선전(善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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