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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신의를 저버린 자가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정치는 법과 제도로만 굴러가는 차가운 기계가 아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유대, 인간적인 신의(信義) 위에 세워진다. 인간 사회는 원칙 이전에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국정 운영 역시 법령 이전에 신뢰와 감정의 공동체 안에서 작동한다. 지도자는 국민을 향해 말하기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책임과 의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결선에 오른 한동훈 전 장관은 이러한 정치의 기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는 스스로 윤 전대통령과의 신의를 저버린 채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겠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엔 원칙주의자의 선언 같지만, 실상은 인간 관계와 정치적 신뢰를 철저히 도외시한 위험한 선언이다. 그는 ‘국민’을 내세우며 정치적 독립성을 말하지만, 그 방식이 공동체를 망각하고 관계를 배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치적 미덕이 아니라 도의적 파산이다.

윤석열 전대통령은 한동훈이 검찰 내에서 일개 검사장에 불과하던 시절, 그를 법무부 장관이라는 중책에 발탁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조치를 넘어서는 파격적 신뢰의 표현이었고, 정치적 생명을 걸고 그를 키운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한동훈은 대통령이 곤경에 빠진 순간 등을 돌리고, 대통령과의 신의를 단칼에 잘라냈다. 정치적 부담은 모두 대통령에게 지우고, 자신은 “국민을 위한다”는 추상적 명분 아래 독자적 정치의 길로 나선 것이다.

물론 정치인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말이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를 파괴하는 명분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를 인간적인 도리와 윤리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순간, 우리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배신을 용인하고,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괴이한 정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한동훈이 결선에 오른 것은 단순한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의를 저버린 자가 지도자의 자격까지 얻게 되는 정치적 왜곡이며, 결국 인간적 공동체로서의 정치 기반을 붕괴시키는 신호탄이다. 정치란 국민과의 약속 이전에,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신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배신하고 탄핵까지 시킨 자가, 과연 수천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능력 중심주의나 이미지 정치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도리와 책임, 그리고 신뢰다. 법과 원칙은 신의(信義) 위에 설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신의를 저버린 원칙은 차가운 독선이 될 뿐이며, 그런 독선이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할 때, 국민은 진정한 정치적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결선을 앞두고 다시금 물어야 한다. 정치를 가능케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기술도, 전략도, 이미지도 아닌, 바로 ‘사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신뢰의 토대 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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